엽기와 독설의 성인 애니메이션

[영화되돌리기] 사우스 파크
엽기와 독설의 성인 애니메이션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킬빌’이 12초 가량 잘린 상태로 18세 이상 관람가로 심의를 통과했다고 한다. 물론 2~3초씩 프레임이 잘려나간 것이 모여 12초이겠지만, 대한민국의 18세 이상은 12초 분량을 판단할 기회조차 빼앗겨 버렸다고 하니 조금 씁쓸하다.

사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영화가 폭력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부인할 만한 결정적 근거는 없다. 하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폭력성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이된다는 데 대한 결정적 인과 관계를 증명해낼 수도 없다. 단지 ‘그럴수도 있겠지’ 하는 우려와 ‘그 정도는 아닐거야’ 하는 불확실한 믿음이 서로 실랑이를 벌일 뿐이다.

그런데 폭력적인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를 신랄하게 비웃는 풍자적이고 역설적인 영화가 한 편 있다. 바로 만화영화 <사우스 파크>.

<사우스 파크>는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총기난사사건을 다룬 마이클 무어의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에도 잠깐 등장했던 맷 스톤 과 트레이 파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미국, 호주, 영국, 프랑스 등의 여러 곳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본래는 TV 시리즈로서 높은 시청률에 힘입어 극장판까지 만들어졌으며 국내에는 극장판만이 출시되어있다.

배경 위에서 귀여운 캐릭터 그림이 움직이는 독특한 애니메이션이지만, 오프닝의 가사를 들어본다면 가시 돋친 말들이 숨겨져 있다. 주인공 스탠의 흥겨우면서도 냉혹한 흥얼거림이 끝나면, 사우스파크라는 어느 외진 산골 마을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시골 마을의 아이들은 보호자를 동반해야 볼 수 있는 등급의 캐나다 영화 <테렌스와 필립> 을 보러 간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아이들의 입에서 거칠고 저속한 욕이 쏟아져 나온다. 욕을 하면 안 된다는 금기를 깨버린 이 네 명의 아이들. 문제는 이들의 영향으로 다른 아이들마저 걸쭉한 욕을 달고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조금은 과장되어 보이지만 그것이 영화의 재미이며, 사실 이 정도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학교에서는 어머니들과 함께 아이들을 고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지만 그 방법이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 영화가 캐나다 영화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캐나다를 반대하는 어머니회를 만든다. 그리고 미국은 이 어머니회를 주축으로 캐나다를 상대로 한 전쟁까지 벌어지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인 테렌스와 필립은 체포돼 공개 처형까지 당할 위기에 처하고 이에 아이들은 레지스탕스를 조직하여 테렌스와 필립 구조작전까지 구상한다.

영화는 많은 부분 과장스런 현실묘사에 의존하고 있다. 욕을 하면 아이들에게 전기충격을 주는 기계까지 등장할 정도니 이 만화영화의 상상력이 상당히 거칠고 비주류적임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판의 강도도 지나치게 신랄해 지옥에서 악마의 마음을 뺏어버린 후세인이나 윈도우98의 버그 때문에 즉결 처형되는 빌 게이츠와 같이 특정인물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은 통쾌하다 못해 사뭇 충격적이다.

한편의 뮤지컬 같은 느낌은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비슷하지만, 귀여운 캐릭터가 아기를 발로 차서 집안에 던져놓으며 욕을 퍼붓는 과격하고 대담한 장면 등은 건전한 디즈니 만화에서는 결코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날카로운 독설과 상상할 수 없는 욕설이 난무하는 이 영화에는 꿈과 희망만을 노래하던 만화영화와는 비할 수 없는 불건전하지만 불쾌하지만은 않은 짜릿함이 있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1-27 13:08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