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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무너져야 배구판이 산다
이경수의 LG·김호철의 현대, 삼성 7년 아성에 도전장
지역연고제 도입 등 프로출범 앞두고 인기 부활에 안간힘






스포츠가 사람을 끌어 들이는 것은 결말을 알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경기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재미, 거기에 극적인 반전까지 곁들여지니 아니 빠져들 수 없다.

만약 결과를 뻔히 예측할 수 있다면? 흥행이 안 되는 것은 불 보듯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의 4대 인기 스포츠 중 하나인 실업 배구는 누구나 아는 시나리오를 수년 동안이나 되풀이하는 우를 범했다. ‘제국’ 삼성화재의 일방적인 독주를 7년 동안이나 속절없이 방관하면서 식상한 팬들로부터 외면을 자초한 것.

그러나 올해는 뭔가 달라질 조짐이다. 삼성화재 천하가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부터가 첫 손가락에 꼽히는 변화다. 프로화 추진 작업의 전 단계로 리그 운영 방식이 대폭 바뀐 것도 인기 부활의 견인차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V투어 2004’라는 이름으로 새 단장을 하는 등 어느 때보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올해 실업배구는 과연 시즌을 마치며 ‘V’자를 그려 보일 수 있을까.


돌아온 '장고'



올 시즌 배구코트의 최대 관심사는 이른바 ‘이경수 효과’로 요약될 수 있다. 2년 전 자유계약 파동으로 국내 무대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던 이경수(LG화재)가 우여곡절 끝에 실업무대로 돌아 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파괴력을 지닌 호재라는 것이다.

한국 남자 배구에서 거포의 계보를 이어 받은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 이경수의 가세는 소속팀인 LG화재를 단번에 우승 전력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이경수의 팀내 비중이 어림 잡아도 절반은 될 것이라고 본다. 공격의 상당 부분이 이뤄지는 레프트 포지션을 확실히 책임지기 때문에 팀 조직력이 덩달아 안정되는 효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경수의 복귀는 무엇보다 스타 기근에 시달리던 배구 코트에 한 줄기 서광이다. 김세진, 신진식(이상 삼성화재) 등 몇몇 선수를 빼면 변변한 스타를 찾기 힘들던 실업배구가 슈퍼스타의 등장으로 한층 힘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돌아온 이는 이경수만이 아니다. 80년대 세계를 풍미했던 ‘컴퓨터 세터’ 김호철도 오랜 이탈리아 생활을 접고 현대캐피탈 사령탑으로 금의환향했다. 현역 시절의 여우 같은 기지와 경기 감각이 지도자로서도 발휘될 지, 올드팬들은 남다른 감회로 그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세력 판도는 어떨까



좌우 쌍포인 김세진과 신진식이 각각 노쇠화와 부상 등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삼성화재는 7년 제국의 철옹성이 무너질 지도 모를 위기에 처했다. 반면 이경수가 복귀한 LG화재, 김호철 체제를 출범시킨 현대캐피탈 등 다른 구단은 눈에 띄게 전력이 상승해 올 겨울 코트엔 한바탕 빅뱅이 몰아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 20일 ‘V투어’ 개막전으로 치러진 삼성화재와 LG화재의 경기는 올 시즌 판도를 점칠 수 있는 하나의 예고편이었다. 삼성화재는 풀세트 접전 끝에 진땀승을 올리긴 했지만 전문가들로부터 전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LG화재는 라이트 공격수 손석범을 필두로 한 기존 멤버들이 한층 향상된 경기력을 선보여 이경수가 본격 가세할 경우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오를 수 있음을 입증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여전히 삼성화재를 최강으로 꼽고 있다. 몇몇 핵심 선수가 빠져 있다 하더라도 국가대표 ‘영건’들인 라이트 공격수 장병철, 세터 최태웅 등이 충분히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데다, 7년 연속 코트 평정이라는 관록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1강(삼성화재), 2중(LG화재, 현대캐피탈), 3약(대한항공, 상무, 한국전력)의 구도에 전문가들의 전망이 모아지는 가운데, 약체로 일단 분류된 대한항공이나 상무의 반란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장광균, 김영래 등 대학무대를 주름 잡던 신인들을 영입해 원활한 세대 교체를 이룬 것이 강점으로 평가받고 있고, 상무는 지난 10월 실업배구대제전에서 우승한 데서도 알 수 있듯 군인 특유의 조직력이 발휘되면 언제든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잠재력이 무기다.


리그 운영 확 달라졌다



2005년 시즌 이후 프로 리그 출범을 목표로 하는 대한배구협회는 올해 ‘V투어 2004’를 야심찬 계획의 시험대로 삼고 있다. 먼저 상무를 제외한 5개 남자 실업팀과 5개 여자 실업팀을 각각 짝지워 5개의 지역연고제로 운영되는 것이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다. 프로화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준 프로’리그인 셈이다.

총 105일 간의 대장정 동안 남녀 실업 11개팀과 대학 8개팀은 중립 지역인 서울과 5개 연고지를 차례로 돌며 6차례의 투어 대회를 벌이게 된다. 각 투어마다 우승팀을 가리는 운영 방식 덕에 지역팬은 완결된 대회의 맛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울러 출전팀 입장에서도 한 투어를 망쳤다고 해서 남은 투어를 포기할 이유가 없기에 시즌 막바지까지 코트의 긴장감이 유지될 전망이다. 대망의 챔피언은 투어 성적을 종합한 결과를 토대로 플레이오프, 결승전을 벌여 가리게 된다.

중간 중간에 적지 않은 이벤트도 마련돼 있다. 실업 배구에 처음 도입되는 올스타전과 관중 참여 행사 등이 그것이다. 인기 중흥을 노리는 배구협회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서 부활을 다짐하고 있는 실업 배구. 겨울 스포츠의 패권을 놓고 농구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옛날의 영화를 과연 되살릴 수 있을까. 뚜껑은 이미 열렸고 해답은 팬들이 말해 줄 것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입력시간 : 2003-12-2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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