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환상특급 타기

[영화되돌리기] 기묘한 이야기
일본판 환상특급 타기

이야기 하나. 대학 합격 소식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 가족들은 예의 기쁜 마음으로 주인공을 맞이하지만 왠지 지나치게 기뻐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주인공의 눈에 이상하게 비친다. 그날 이후, 주인공의 가족들이 돌연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조부의 사망과 언니의 유학, 아버지의 전근으로 혼란에 빠진 주인공은 아버지의 회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가족이 ‘렌탈 가족’이고 자신의 친부모가 업무상 오지로 떠나면서 주인공에게 임의의 가족을 만들어주고 대학 입학 때까지 맡아달라는 계약을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가짜 어머니와 마지막 아침식사를 하는 주인공, 계약이 끝나 싸늘해진 모정을 뒤로하고 집을 나서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야기 둘. 풍경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주인공이 아내와 함께 겨울 산에 오르다가 그만 조난 사고를 당한다. 다리를 다친 주인공은 중상을 입은 아내와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지만, 상처가 악화된 아내는 결국 숨을 거둔다. 그런데 눈 속에 아내의 사체를 묻은 남자는 다음 날 아침 자신의 옆에서 가지런히 놓여있는 아내의 사체를 발견한다. 다시 사체를 묻어도 그 다음날 어김없이 옆에 누워있는 아내. ‘혹시 시체가 걷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 주인공은 텐트 앞에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해둔다. 다음 날 아침 주인공이 비디오를 확인하려는 순간, 구조대원이 들이닥쳐 그를 병원으로 후송해간다. 그날 밤 비디오를 확인하는 구조대원들은 아내의 시체를 들고 텐트로 들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시간의 병원에서는 영안실에서 누워있던 아내의 시체를 질질 끌고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이 포착된다.

미국의 TV 시리즈 ‘환상특급’(원제 : Twilight Zone)을 기억하는 이에게는 별로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이 이야기들은 일본의 후지 TV에서 1990년 4월부터 방영한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 중의 한 부분이다. 화자가 등장하여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옴니버스 구조로 이루어진 이 프로그램은 ‘환상특급’처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10년간 방영되었고, 그 중에서도 선별된 네 가지가 영화화 되었다.

네 가지 이야기는 폭우 때문에 기차역에 발이 묶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화자로부터 시작된다. 각각 ‘설산’, ‘사무라이의 휴대폰’, ‘체스’, ‘결혼 시뮬레이션’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 중 ‘체스’ 편은 극장에서는 상영되지 않았고, DVD에서 몇 개의 사지선다 퀴즈를 풀고 나면 볼 수 있다. (자칫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데, 물음표로 표시된 곳으로 들어가야만 ‘체스’를 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수퍼 컴퓨터와 체스 챔피언간의 대결을 그려낸 ‘체스’는 체스판 위의 말을 하나 잃을 때마다 현실속의 사람이 하나씩 죽는 내용을 담고 있다.

네 가지 이야기가 멈추면서 비가 그치고 기차역에 발이 묶였던 청중들이 하나씩 자리를 비운다. 하지만 그 순간 ‘하나 더’를 외치는 한 노숙자. 아마도 어느새 천일야화의 왕이 되어버린 관객들의 바람도 그 노숙자의 외마디에 담겨져 있지 않을까. 화수분처럼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묘한 이야기의 전말이 궁금한 사람은 천편에 가까운 드라마를 찾아보길 바란다. 일본의 당대최고 스타들의 슬프거나 무섭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할테니.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1-02 17:41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