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징크스를 만들지 마라


‘머피의 법칙’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이 노래 덕에 온갖 머피의 법칙이 유행처럼 터져 나오기도 했다. 다른 데 갈 때는 자주 오던 버스가 기다릴 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원수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중요한 미팅에 립스틱을 놓고 와 입술이 둥둥 떠있다. 다 정리한 원고가 한순간 컴퓨터 오류로 날라간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머피의 법칙에 공감하는 까닭은 자신이 비슷한 경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골프에도 이 머피의 법칙은 어김없이 살아 있다. 한번 안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꼬인다. 실제 첫 홀에 꼬이면 마지막 홀 까지 꼬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좀처럼 실수를 만회하기 힘들다.

이런 날은 눈에 들어오는 것, 손에 잡히는 것 등등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클럽 선택에서도 실패하고, 캐디들까지 애를 먹인다. 만에 하나 이날 경기가 아주 중요한 라운드였다면, 이것이 징크스로 남아 일년 내내 고생할 수도 있다.

정말 다시는 그 날 같은 날을 맞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한 동안은 몇 번씩 꼭 온다. 버디 찬스가 왔는데, 보기로 무너진 기억이 있는 홀은 다음 번에 그 홀을 만났을 때 꼭 보기를 하게 된다.

명색이 국가대표까지 지낸, 프로골퍼인 필자에게도 머피의 법칙은 피해가지 않는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한 홀에서 12타를 친 적이 있다. 파 5홀도 아닌 파3홀에서. 앞의 멤버들이 안 보여 마음이 급해지는 바람에 연습 스윙 없이 티샷을 하다 그만 OB. 낯 뜨거워서 다시 한번 급하게 치다가 또 OB.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그 골프장에서 경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홀에 다다르니 그 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했지만, 너무 긴장한 탓인지 역시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그러고 보면 머피의 법칙도 심리적인 면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징크스라 생각하면, 이것이 행동으로 연결된다. 그런 날을 맞지 않으려면 아주 작은 습관부터 미리미리 고치고 준비해야 한다. 잘 되어도 안심하지 말고 또 점검, 또 확인, 또 조심, 해야 한다. 그래야 머피의 법칙을 피할 수 있다 .

올해는 미리 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길러보자. 전날 밤, “내일 새벽에 골프가 있는데….” 걱정을 하면서도 술잔을 연신 들이키는 어리석은 일을 올해는 그만 하자. 대신 사나흘 전부터 인도어연습장에 나가 부드럽게 몸도 풀고, 베란다에 설치해 놓은 퍼팅 매트에도 올라서 보자.

하루 전쯤 이면 인터넷 등에 들어가 미리 홀을 한번 살펴 보자. 홀 소개를 찬찬히 읽어보고, 공략법도 익히자. 머리 속으로 홀을 그리며 샷하는 것을 상상도 해 보자.

그러면 2004년은 2003년과는 다를 것이다. 골프를 못 치는 것은 너무나도 싫지만 골프에 더 끌리게 되는 것은 그 못쳤던 수모의 기억들일 때가 많다. 그래도 그렇지, 기왕이면 잘 쳐서, 그래서 더 골프를 하고 싶은 게 훨씬 낫지 않겠는가.

입력시간 : 2004-01-02 17:5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