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코트의 '조커' 식스맨베스트 5에 버금가는 전력의 핵심, 승부가르는 해결사

'5+1이 승패 쥐락펴락'
농구코트의 '조커' 식스맨
베스트 5에 버금가는 전력의 핵심, 승부가르는 해결사


넘버 3(쓰리)도 아닌 넘버 6(식스)다. 최고만이 대접 받는 세상에서 넘버 3도 보잘 것 없건만 넘버 6이라니? 누가 쳐다봐 주기라도 기대하면 언감생심 아닐까.

하지만 넘버 6가 없으면 조직 전체가 삐걱대고 구성원들이 헉헉거릴 수밖에 없는 분야도 있다. 프로농구다. 5명의 선수로 팀을 만들어 그라운드에 나서는 게 농구의 룰이지만 몇 달에 걸친 장기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프로농구는 사정이 다르다.

베스트 5(파이브)가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로 짜여져 있더라도 여섯번째 선수, 즉 식스맨(sixth manㆍ주전 대체용 후보 선수)이 시원찮은 팀은 절대로 강팀이 될 수 없다. 주전 선수의 체력 고갈과 부상 등 경기 중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비상 상황에 맞닥뜨리면 뾰족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프로농구에서 식스맨이 전력의 핵심 요소로 평가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03~2004 애니콜 프로농구가 열기를 더해가면서 똘똘한 식스맨 한 명이 주전 한두명 이상의 몫을 해내는 경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식스맨은 숨은 주전

식스맨은 통상적으로 주전 5명을 뺀 나머지 선수 중에서 출장시간이 가장 많다. 주전 선수를 대체할 수 있는 1순위 벤치 멤버로서 감독의 특명이 떨어지면 언제든 코트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어떤 식스맨은 단지 선발출장을 하지 않을 뿐 실제로는 주전 이상의 기량을 가진 선수도 적지 않다. 체력적인 문제 등의 이유로 풀타임을 소화해 내기 어려워 잠깐씩 기용되는 경우인데, 이제는 노장이 돼버린 농구천재 허재(원주 TGㆍ플레잉코치)가 단적인 예다.

전술적인 활용도에서도 식스맨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주전들의 부상이나 체력 안배 때문에 땜질용으로 식스맨들을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경기의 승부처에서 해결사로 투입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예컨대 득점포를 무섭게 가동하는 상대 슈터를 꽁꽁 묶어야 할 순간이라면 찰거머리 수비수를, 경기 막판에 뒤집기를 노린다면 3점슛에 능한 슛도사를 출장시키는 식이다. 전문화된 용병술이다. 특히 창원 LG은 식스맨 자원이 풍부해 주전들을 아끼는 동시에 상대팀 정예 멤버들의 체력을 바닥내는 전술로서 식스맨들을 대거 활용해 쏠쏠한 재미를 보기도 한다.

▲최고 식스맨은 누구

지난 시즌 프로농구 식스맨(우수후보선수)상은 박규현(창원 LG)에게 돌아갔다. 그는 이번 시즌에도 역시 ‘열 주전 안 부러운’ 활약을 펼치며 식스맨 2연패를 향해 달리고 있다. 시즌 초반 중위권에 처져 있던 LG가 최근 2위까지 치고 나온 데는 식스맨들의 고른 활약이 밑거름이 됐고, 그 중심에는 바로 박규현이 있었다는 평가다.

박규현의 특기는 가로채기. ‘거미손’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환상적인 가로채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주전으로 뛴다면 스틸왕은 따논 당상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지난해 우수수비상을 수상한 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비 능력도 일품이다. 김승현(대구 동양) 이상민(전주 KCC) 신기성(원주 TG) 등 국내 최고의 민완 가드들도 박규현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박규현이 요즘 숨겨 놓았던 공격력까지 맘껏 분출해 김태환 LG 감독의 입을 함지박만하게 찢어 놓았다. 새해 첫날 벌어진 선두 원주 TG와의 대회전에서 알토란 같은 10득점을 쓸어 담아 팀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등 경기당 10점 이상의 만만찮은 득점력을 발휘하고 있다.

날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박규현에게도 강력한 라이벌은 있다. 실력에다 이름마저 비슷한 박지현(대구 동양)이 주인공이다.

포인트 가드인 박지현은 선배인 ‘꾀돌이’ 김승현과 포지션이 겹쳐 그늘에 가린 불우한 식스맨이다. 하지만 농구판에서 김지현의 잠재력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빼어난 기량을 소유하고 있다. 대구 동양이 치른 전 경기에 출장한 박지현은 현재 경기당 평균 7.7득점, 2.7어시뵈??기록하며 주전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출장시간으로 따지면 소속팀에서 분명 여섯번째 선수이지만, 다른 팀에게는 당장 데려다 주전으로 쓰고 싶은 포인트 가드다.

박지현의 진가는 지난 연말 김승현이 부상으로 잠시 코트를 비웠을 때 확실히 드러났다. 3연패의 위기에 몰렸던 대구 동양은 김승현 없이 안양 SBS전에 나섰지만 일말의 불안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박지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경기에서 15득점, 11어시스트를 올리는 ‘김승현급’ 활약으로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올해의 식스맨 자리를 놓고 박규현, 지현 선수가 자웅을 겨루는 형국이지만 알짜배기 식스맨은 어느 팀에도 있다. 식스맨의 왕국 창원 LG의 배길태 김재훈 송영진, 선두를 질주중인 원주 TG의 허재 신종석, 인천 전자랜드의 김훈, 박훈근, 전주 KCC의 정재근, 울산 모비스의 김승기 등도 약방의 감초처럼 소속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력의 일부다.

눈길을 끄는 것은 상위권에 속한 팀일수록 확실한 식스맨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위권팀 감독들이 베스트 5의 약세를 푸념하면서도 이들을 대체할 식스맨의 부재를 더욱 안타까워 하는 까닭을 여기서 읽을 수 있다.

바야흐로 우리 프로농구는 넘버 6의 전성시대로 접어든 느낌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01-09 19:06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