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진흙탕엔 왜 가?


새로운 다짐으로 한해를 맞이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설날이 코 앞에 다가왔다. 며칠 빨라진 명절 탓인지는 몰라도 새해의 첫달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듯한 느낌이다.

꽉꽉 막힌 도로며 주부들의 명절 증후군 악몽이 되풀이되더라도 역시 명절은 명절인지라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여 잠시 잊었던 정을 나누며 세파에 시달린 마음을 혈연의 따뜻함으로 서로서로 감싸준다.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부엌에서 방에서 왁자하니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철없는 아이들은 공연히 신이 나 정신없이 뛰어다닐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 특히 남자들이 빼놓지않고 하는 공통된 화제는 역시 정치판일 것이다. 더군다나 얼마 남지않은 선거를 감안한다면 올 명절은 분명히 열띤 토론의 장이 될 것이 틀림없다.

고향에서 쓸만한 인물이 나왔는지, 친하지도 않고 일자면식도 없지만 나랏일 하겠다고 나선 후보들의 확인할 수 없는 사생활부터 정치이력까지 낱낱이 들추어내며, 되네 안되네 떠들어댄다. 명절음식을 장만하느라 허리가 휘는 아내들이 눈을 흘겨가며 ‘또 그놈의 정치타령이유?’ 하는 비아냥 속에서도 꿋꿋하게, 핏대까지 올려가며 재야 정치 평론가임을 자청할 것이다.

정치판을 얘기하자면 지난 1년은 한마디로 환멸뿐인 시간이었다. IMF 때보다 더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요즘에 정치인들이 보여준 행태는 이 나라에 대한 미련과 희망의 싹을 여지없이 잘라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라의 경쟁력은 하락하고 국민들은 경제적 위기감에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정치판은 이런 고통은 싹 무시하고 꼴사나운 진흙탕 싸움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지치지도 지겹지도 않은지 정말 줄기차게 싸움질만 해대고 있다.

국민들의 원망과 분노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이런 정치판이 뭐가 좋은지 선거를 앞둔 요즘 몇몇 인물들의 등장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인기 아나운서인 한선교씨가 이번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방송을 떠나자 방송가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이 술렁거렸다. ‘아까운 사람 하나 버렸네’ 라든가 ‘쯧쯧, 흙탕물에 발을 적시는군’ 하는 안타까운 만류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요즘처럼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과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여론 앞에 정당들은 위기감과 초조함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이런 때에 한선교씨처럼 지명도와 인기와 참신한 매력을 가진 인사의 영입추진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도 방송가의 많은 인물들이 자의에 의해, 타의에 의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봉두완, 이윤성, 정동영같은 앵커들부터 이순재, 강부자, 신성일, 이주일같은 연예인들까지 결코 적지않은 수의 사람들이 국회로 들어갔다. 이들의 선택이 옳았다든가, 틀렸다던가, 성공이나 실패의 결과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 중 몇은 아직도 정치판에 남아있고 몇은 쓰라린 마음으로 떠나갔다. 작고한 이주일은 자신이 겪었던 정치판을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같은 곳’ 이라는 말로 씁쓸함과 실망을 드러냈다.

방송인이 꼭 방송만 하라는 법은 없다. 참신한 인물이 참신한 생각으로 참신한 정치를 하며 새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다. 다만 아쉬울 뿐이다. 앵커로서 아나운서로서, 연예인으로서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전혀 엉뚱한 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소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다. 재능있고 분별력있는 언행으로 시청자를 즐겁게 만들었던 사람들이 어찌된 일인지 정치판에만 뛰어들면 그 빛을 잃어버리는지 모르겠다. 똑똑하고 자유분방한 사고력은 망가지고 헝클어져서 며칠 소금에 푹 절여져 숨죽은 배추마냥 물러진다.

괜찮은 사람만 눈에 띄었다하면 물불 안 가리고 자신의 정당으로 끌어들이려는 기존의 정치인들이 조만간 천하장사 출신인 강호동에게도 그 손길을 뻗치지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 몸싸움이 다반사인 국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강호동이겠지만 우리 시청자들도 그의 시원스런 입담이 필요하다.

입력시간 : 2004-01-1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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