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의 그림자, 그리고 희망
[영화되돌리기] 브레스트 오프 폐광의 그림자, 그리고 희망 최근 유럽에는 이른바 ‘다운 시프트’족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삶의 속도를 줄여 일상의 여유를 즐기는 부류로 슬로우 푸드나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저속기어 변환족(Down Shift), 즉 자진 경쟁 탈락자들이 유독 영국에서 많이 생겨나고 있다. 장기 경기침체에 빠졌던 영국이 서서히 경기를 회복하면서 개인들도 자신의 삶에 자신감을 갖게 된 모양이다.
하지만 지난 80, 90년대까지만 해도 영국은 강성노조와 고실업으로 ‘영국병’을 앓고 있었던 나라였다. 결국 수 차례의 구조조정 결과 수많은 노동자가 실업자가 되어 정부와 극단적인 대립양상을 보였는데 이러한 갈등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자가 대처 총리다. 이른바 대처리즘으로 불리던 신자유주의정책으로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앉게 되고 결국 이러한 현실에서 ‘퍼킹 대처(Fucking Thather)’를 외쳐야만 하는 노동자들. 이들의 궁핍하고 암울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는 영화가 바로 <브레스트 오프>이다. 불황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운 80년대 영국. 정부가 100개가 넘는 탄광을 폐쇄하자 약 25만 명이라는 실업자가 생겨났다. 하지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광부들의 어두운 모습만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적어도 영화 <브레스트 오프>속의 광부들은 일터를 잃는 것을 삶의 의미를 잃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브래스드 오프>는 폐광을 앞둔 탄광촌 광부들의 밴드 이야기이다. 그림리 탄광밴드의 단원들에게 불안하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밴드를 계속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 열정과 집중력을 잃은 상태에서 음악대회에 참가하지만 결과는 역시 참패. 지휘자 대니는 형편없는 연주라고 단원들을 몰아세우고 이겨낼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을 앞에 둔 단원들은 갈팡질팡한다.
밴드의 지휘자 대니의 아들 필립은 설상가상으로 빚에 쪼들리고 부인마저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린다. 폐광을 반대하지만, 퇴직금이라는 당근 때문에 폐광 결정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필립은 광대일까지 하면서 고된 삶을 꾸려간다. 생계고와 음악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필립과 달리 그의 아버지 대니는 빈곤이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삶의 소박한 의미를 되새겨주는 인물이다. 병으로 쓰러지는 설정이 조금은 상투적이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피트 포슬스웨이트가 대니역에 잘 어울리고 있다. 또, 중요한 배우는 바로 이완 맥그리거이다. 그는 대니 보일 감독의 <트레인스포팅> 성공 이후 미국으로 날아가지 않고, 영국에 남아 <브레스트 오프>에 출연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성공을 보장하는 할리우드로 바로 가지 않고 영국에서 또 한편의 영화를 남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에 대한 기대를 품어보게 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값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짐은 아쉽기도 하다. 밴드를 소재로 한 <브레스트 오프>에서 음악은 빼놓을 수 없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클래식 음악이 많이 등장하는 데 그 중 아랑후에즈 협주곡은 KBS의 토요명화의 오프닝 음악으로 많이 알려진 곡이다. 엔드 크레딧을 보면, 사운트 트랙을 연주한 그림리 탄광 밴드 단원의 이름이 따로 오른다. 그다지 탄탄한 구성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대사없이 현실을 표현하는 비장한 음악과 배우들의 좋은 연기는 다소 어둡고 황량할 듯하면서도 희망적인 영화의 분위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입력시간 : 2004-01-3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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