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빙의 현상


빙의 현상이라는 게 있다. 이 말은 일상 생활에서도 이미 자주 쓰곤 한다. 정신의학적으로 파고 들자면 그 원인과 구체적인 증상을 설명하는 게 복잡하지만, 종교적으로 해석하자면 ‘귀신들림’, ‘귀신에 씌움’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귀신이 씌었으니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말이 튀어 나오고, 자신의 뜻과 상관없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

골프계에서도 이 말은 아주 흔히 사용된다. ‘골프 빙의’라는 말이 만들어졌을 정도다. 프로 골퍼들치고 골프 빙의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PGA나 LPGA에서 활약하고 있는 톱클래스의 골퍼들도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까 싶다.

라운딩 도중 또는 라운딩이 끝난 뒤 스스로가, 또는 곁에서 지켜본 동료들이 “골프 빙의에 걸린 것 아냐”하는 말들을 할 때가 있다. 이 경우에는 영락없다. 스코어는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다. 심지어 어떤 골퍼는 라운딩이 끝난 뒤 자기 점수가 얼마나 나왔는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이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이렇게 대답한다. “잘 모르겠어. 그냥 힘들었어. 손에 감이 없었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손목이 막 꺾이고….” “마치 골프채는 내가 잡고 있지만 휘두르는 건 다른 사람인 듯 했어.”

아마골퍼들에게도 이런 골프 빙의는 예외가 아니다. 아니 스스로 빙의라고 진단하는 경우는 더 많을 것이다. 연습 부족 혹은 잘못된 스윙 습관 때문에 공이 잘 안 맞는 경우에도 빙의 탓으로 돌리는 아마골퍼도 적지 않으니까.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한자리에서 OB를 연거푸 내고, 별로 길지도 않은 거리인데 그린 위에 올라가 4퍼팅을 하고, 그리 어렵지 않은 벙커에서도 3번 이상 헤매고 등등.

이럴 때는 사실 속수무책이다. 필자의 경험이지만 이 경우에는 “아, 이런 게 빙의라는 거구나”하면서 마음을 접는 것이 더 현명하다. 괜시리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더 힘들고 지치게 할 것이다.

필자는 연습을 할 때도 빙의 현상 비슷한 것을 경험했다. 진짜 해도 해도 안되는 경우가 있었다. 오기가 생겨 “그래, 골프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며 달려들었는데, 결국 그 연습 이후로 지금까지 오른쪽 어깨 탈골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올해는 해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심한 빙의 현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한번 제대로 걸리면 휴유증이 한달은 간다. 그 동안은 골프 클럽을 아예 잡고 싶지도 않다. 빙의 현상이 잘못된 스윙을 고칠 때 슬며시 찾아와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스르륵 고쳐놓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 본다.

입력시간 : 2004-02-0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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