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기가 막힌 점괘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은 가끔씩 학생들의 가방검사를 하곤 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이루어지는 이 가방검사는 학생들을 위한 선도의 목적이 컸겠지만 우리로서는 그다지 달갑지않은,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말이지 운이 지독하게 없는 날이었다.

선생님들은 면학 분위기를 방해할 만한 요소를 지닌 우리의 귀중한 것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만화책이나 야한 여자들이 가득한 잡지책들, 때로는 담배까지 우리가 은밀함 속에서 몰래 지니고 다니던 것들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번은 나도 아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방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아주 용하다는 곳에서 점을 보고 부적을 하나 받아오셨는데 늘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해서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녔었다.

“이거 부적 아냐? 이거 가지고 다니면 대학에 척 붙냐?”

반 아이들의 웃음이 낭자하게 퍼지고 난처해진 나는 솔직하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올해 교통사고 위험이 있다고 해서…. 압수 하실 거 아니죠?”

무사히 돌려 받은 그 부적의 힘이었는지 어쨌든 나는 교통사고를 겪지않고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창피하다고 하면서도 어머니가 준 부적을 책가방에 간직하고 다닌 걸 보면 나 역시 부적의 힘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새해가 되면 점집은 한해의 운세를 미리 알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또 점쟁이들은 부적을 쓰느라 바쁘다. 직접 부적을 써주는 점쟁이들도 있고 공장에서 인쇄된 부적을 건네주는 점쟁이들도 있다고 한다. 요새는 인터넷으로 부적을 보내주는 곳도 성업 중이란다.

알고 보면 연예인들도 점을 즐겨 본다. 새로운 프로에 캐스팅 될 수 있는지, 어떤 영화를 찍어야 대박이 날 수 있는지가 궁금해서 유명하다는 점집을 전전한다. 내가 알고있는 연예인A는 몇 년 전 거금 2백만원을 들여서 굿을 하고 부적을 받아왔다.

인기도 시들고 슬럼프인지 캐스팅도 잘 안돼서 초조해하던 연예인A는 굿을 하고 부적을 받은 탓인지 얼마 후 정말로 프로그램에 투입됐다. 주변에서는 정말 용하다며 다투어 그 점집을 소개시켜 달라고 난리였었다

요즘 점집의 단골손님들은 누구일까? 장담하건대 정치인들일 것이다. 4월에 선거가 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정치에 무관심하고 환멸을 느끼는 국민들도 은근히 발동이 걸리는데 하물며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발로 뛰고 가족과 친척을 동원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선거운동도 하지만 그래도 불안하기 때문에 점쟁이를 찾는다. 자신의 당락을 묻고 은밀한 비책과 부적이 동원된다.

점쟁이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000이 당선 될 거라며 호언장담을 하는 점쟁이들이 한둘은 꼭 있다. 한 점쟁이는 ‘000 후보는 대통령 상이 아니지만 부인이 영부인 상이라 당선 될 것’ 이라고 예언했었는데 결과는 낙선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점집은 망했을 것이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나간다는 정치지망생B가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다. 대통령 선거 때부터 이름을 날린 후 수많은 정치인들이 그 점쟁이의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는 소문이었다. 정치지망생B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엄청난 액수의 복채를 내고 점괘를 기다렸다.

“당선 된다, 내가 모시는 애기 동자가 당신을 찍었어. 부적까지 쓰면 더 확실해져.”

“정말이지요? 틀림없이 이번에 제가 국회에 가는 거죠?”

“나를 믿어. 우리집에 유명하다는 정치인치고 안 온 사람이 없어. 000의원 알지? 어제 그 사람도 왔었어. 내가 그 사람 사주를 보니까 당선이더라구. 확실하게 하려고 부적까지 써줬지. ”

순간 정치지망생B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000의원요? 나하고 같은 지역군데…. 그 사람도 당선되고 나도 당선되면 이게 뭡니까?”

입력시간 : 2004-02-06 14:1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