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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 여행] 남진(上)
이땅의 누이들을 달뜨게 한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60년대 말부터 70년대 내내 가요계를 평정하며 슈퍼스타로 군림했던 남진. 동시대의 또 다른 슈퍼 스타 나훈아와는 숙명의 라이벌 경쟁으로 팬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릴 만큼 잘 생긴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 그리고 경쾌한 율동은 그를 진정한 오빠 부대의 원조로 가요사에 자리 잡게 했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던 그는 영화 배우로서도 큰 인기를 누렸고, 제14대 가수분과위원장과 연예협회 회장까지 역임했다.

남진(본명 김남진)은 5대 국회의원, 호남매일신문 사장, 정미소 사업을 했던 갑부 사업가인 부친 김문옥씨와 모친 장기순씨의 부유한 가정에서 3남 4녀 중 장남으로 1946년 9월 27일 전남 목포 남교동에서 태어 났다. 그는 어린 시절 차분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어린 시절 그의 꿈은 가수가 아닌 영화 배우였다. 목포 북교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경복중을 졸업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목포고에 입학했다. 당시 세상을 뒤집어 놓았던 엘비스 프레슬리에 그도 반해 버렸다. 가족 몰래 가수가 되겠다는 마음을 품고 상경했다. 작곡가 한동훈의 픽업으로 남진이란 예명으로 64년 12곡을 취입해 데뷔 음반<서울플레이보이/킹스타ㆍ65년1월>을 발표했다. 당시는 현미, 한명숙, 최희준 등 허스키한 목소리의 가수들 전성시대. 부드러운 음색의 남진은 큰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본격적인 가수 활동도 못하고 공백기를 가졌다. 고교 졸업 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외국 팝송을 즐겨 들었던 대학생 남진은 취미로 학내의 공연에 참가했고, 외부 공연장도 빠트리지 않고 찾아 다녔다. 준수한 외모의 그는 그룹 미팅의 사회자로도 활동할 만큼 여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이처럼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아들을 당할 수 없었던 모친은 ‘ 이왕 하려고 최고가 되라’며 정성 어린 뒷바라지를 했다.

1년 후인 66년 12월, 김영광 작곡의 <울려고 내가 왔나/오아시스>를 내 놓으며 본격 활동에 들어 갔다. 이 앨범은 보름만에 7,000장이 팔려 나가는 빅 히트를 기록했다. 또한 블루스, 트롯, 왈츠, 차차차, 트위스트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자유자재로 선보이자 각 레코드사와 쇼 단체로부터 치열한 스카우트 전이 벌어졌다. 연기 공부를 했던 그는 무대 위에서 의상 컨셉과 노래에 어울리는 독특한 몸짓을 개발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 갔다. 67년 1월, 주목받는 신인가수로 시민회관에서 열린 연극영화상(한국일보 주최) 시상식에서 초대 가수로 오르고 1967년 MBC 방송의 신인 가수상을 수상하며 젊은 여성들의 우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울려고 내가왔나'가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 처분이 내려졌다. 67년 3월 전속사를 지구로 옮기면서 발표한 박춘석곡 '가슴 아프게'는 그의 확실한 출세작이 될 만큼 연타석 히트를 터트렸다. 한달 만에 남진은 이미자를 누르고 전국레코드 판매성적 1위에 등극하면서 4월의 최고 가수로 선정되었다. 이 곡은 또 최고 인기곡으로 뽑혔다. 연기를 전공한 준수한 외모의 그는 자신의 히트곡 '울려고 내가 왔나', '가슴 아프게'등 동명의 영화뿐 아니라 '형수' 등 수많은 영화에 주연 배우로 발탁되며 영화 배우의 꿈도 이뤄냈다. 관심의 표적이 된 남진에게서는 수많은 여가수, 배우들과의 스캔들 또한 양산됐다.

1968년 남진은 해병대에 입대하여 69년 7월 월남에 파병되었다. 2년 간 북부 호이안에서 마이크 대신 M16 소총을 든 청룡부대 2대대 5중대2소대 소총수로 싸웠다. 당시 청룡부대에는 남진 외에도 진송남, 이명진, 태원등 세 명의 가수가 더 있었다. 1969년, 월남장병 남진은 TBC 방송가요 대상에서 남자 가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군복무로 인한 2년 간의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구레코드는 남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70년 4월, '청춘' '파도의 블루스' 등을 수록한 신보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의 최대 라이벌로 등장한 나훈아는 최고의 인기 가수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휴가를 얻어 잠시 귀국한 남진은 11월, 신보 '사랑이 스쳐간 상처'를 발표해 나훈아의 '두 줄기 눈물'을 제치고 가요차트 정상에 올랐다. 가요 사상 최대 라이벌인 남진, 나훈아 대결의 서막이었다.

71년 6월 남진의 제대에 맞춰 지구와 오아시스간에는 치열한 스카웃 전쟁이 벌어지고 동향인 인기가수 조미미와의 약혼설도 터졌다. 뜨거운 인기의 반증이었다. 공식 복귀 무대는 7월의 TBC TV의 <쇼쇼쇼 남진아워>. 발 빠르게 컴백 신보 음반 '마음이 약해서'도 발표했다. 제대 3개월 후인 9월, '귀국 리사이틀'이 시민회관 무대에서 열렸다. 남진의 리사이틀은 불황을 깨는 것은 물론 당시의 뉴웨이브음악인 포크, 록 등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 우왕좌왕하던 트로트의 부활을 꿈꾸게 할 만큼 대성황을 이뤘다. 사흘 후인 71년 9월 22일 방송가요대상에서 그는 남자 가수상의 영예를 되찾으며 최고 가수로 등극했다. 이에 나훈아도 뒤질세라 10월 2일 시민회관에서 <나훈아 리사이틀>을 개최했다. 누가 관객 동원에서 승리할 것인지 여부가 당시 대중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나훈아 역시 매진 사례를 이루며 두 사람은 호각지세를 이뤘다. 당초 3년 간의 공백기를 가진 남진을 누르고 나훈아가 가수 왕에 뽑힐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남진이 71년 MBC 가수 왕에 등극했다. 이후 두 사람은 언론의 부채질도 한 몫 했지만 사상 유례가 없는 과열 경쟁으로 가요계를 후끈 달궈 놓았다.



최규성 가요 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 2004-02-1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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