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대통령의 자격


조선시대 태종은 세종을 보위에 오르게 하고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났다. 세종의 왕비인 소헌왕후는 국모의 자리에 오른 지 몇 달 안돼서 친정 아버지 심온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태종은 왕의 장인인 심온이 혹시라도 국왕 이상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 끝에 작은 사건을 빌미삼아 그를 죽여버렸던 것이다. 후대 사람들은 태종이 사돈은 죽이면서 며느리인 소헌왕후를 그대로 왕비의 자리에 남게 한 것은 태종의 대범한 결단력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심온이 억울한 누명에 의한 희생양이었기 때문에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세종의 수많은 업적이 이루어진 치세 뒤에는 아들의 확실한 왕권강화를 위해 사돈도 가차없이 죽여버리는 태종의 냉정하고 과감한 결단력이 큰 토양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돈이라는 관계는 굉장히 어렵고 조심스러운 관계이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졸지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이지만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긴장된 관계가 바로 사돈지간이다. 그렇지만 혈연관계도 아니면서 이루어진 이 사돈관계는 때로는 피보다 더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고대사회에서 왕들이 수많은 왕비를 둔 것은 정복자로서 일종의 볼모를 잡아두는 의미도 있었다. 정복지의 딸을 왕비로 삼고 사돈관계를 맺어놓으면 차마 반역을 하지 못하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재벌들이 이러한 역사적 사돈관계를 대물림하고 있다.

매 정권마다 대통령의 가족들이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대통령의 부인이, 동생이, 아들이,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친인척이 권력의 꼬리를 잡고 선량한 국민의 돈을 뜯어먹는 악순환이 되풀이 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벌가중 하나는 사회 각계 각층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계, 정계는 물론이고 언론, 학계 등 웬만한 직업군은 다 꿰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거미줄같은 사돈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렵고 조심스러운 관계이지만 여차하면 서로가 힘을 빌리고 빌려주는 막후 지원자로서 사돈만큼 든든한 세력도 없다는 결론이다.

결혼이 일대일의 관계성립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이 하는 것이라는 게 우리나라의 전통관념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평생 살 부비고 살아야 하는 내 가족을 맞아들이는데 있어서 상대방의 가족력을 보지않을 수는 없다. 연애를 할 수 없었던 전통사회에서 사돈의 명성과 사람 됨됨이를 따져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며, 옛말에 며느리를 들이려면 그 친정 어머니를 보라는 말도 있을 만큼 사돈에게 품는 감정은 뚜렷하게 모순되고 상반된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또 하나의 사돈 관계가 우리나라를 술렁거리게 만들고 있다. 대통령 형의 부인의 남동생,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대통령 형수의 동생이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았다. 허긴 대통령의 사돈이라면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긴 하다. 그러니까 수백억의 돈이 몰렸을 것이다. 민경찬씨에게 돈을 들이민 사람들은 결코 그를 보고 돈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뒤에 버티고 선 거대한 존재, 대통령 사돈이라는 위력적인 그림자에 거액을 베팅한 것이고 민경찬은 권력자의 사돈이라는 하늘이 내린 행운을 결코 놓치지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난 왜 로또에 안 뽑히나?’ 하는 자조가 아니라 ‘난 왜 대통령의 사돈 한번 못되나’ 하는 자조가 서민들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매 정권마다 대통령의 가족들이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대통령의 부인이, 동생이, 아들이,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친인척이 권력의 꼬리를 잡고 선량한 국민의 돈을 뜯어먹는 악순환이 되풀이 됐다. 그런데 이제는 알량한 친인척도 모자라 사돈까지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상상도 못할 거액을 쓸어담았다.

세월이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어도 똑같이 되풀이 되는 이런 비리를 언제까지 두눈 뜨고 보아야 할지 막막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은 대통령을 뽑을 때 피붙이며 일가 하나 없는 고아이면서 평생을 독신자로 살겠다고 맹세한 후보에게 희망을 걸어볼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인가….

입력시간 : 2004-02-1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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