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필드에서는 말을 아껴라


며칠 전 라운딩 때 있었던 일이다. 많이 포근해진 날씨에다, 오랜만에 필드에 나와서인지 필자는 물론이고 동반자들도 모두 기분좋게 플레이를 시작했다. 몇 홀이 지났을까. 함께 치던 K씨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 P씨! P씨는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백스윙이 이상해. 왜 백스윙 할 때 몸을 그렇게 움직이지? 뒤에서 보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아. 자기는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뒤에서 보면 얼마나 웃긴지 몰라. 그렇게 꿈틀거리지 않으면 백스윙이 잘 안되는거야?”

K씨의 그 말에 모두들 웃었다. K씨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물론 좋은 의미였다. P씨와 그 정도의 농담섞인 충고는 어렵지않게 할 만큼 가까운 사이인데다, 자기가 보기에는 그렇게 스윙을 하는 게 보기에도 좋지않고, 핸디캡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였다.

이 말을 들은 P씨는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겠지만 드러내놓고 불쾌해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이후 P씨는 그날 라운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흔히 하는 말로 죽을 쒔다.

필자는 P 씨가 백스윙을 할 때 왜 몸을 꿈틀대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P씨가 백스윙을 하기 전에 자신만의 타격 리듬을 잡는 것이었다. 사람들마다 각기 조금씩은 차이가 나기 마련인 자신만의 리듬 유지 방법인 것이다.

때문에 P씨의 꿈틀대는 행동은 보기가 좋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절대 교정이 안 되는 부분이다. 그건 P씨의 고유 스윙폼이라고 생각해도 될 만한 사항이다. 그 모습이 보기에 좋지않다고 해서 억지로 고치려다가는 자칫 스윙 자체를 망칠 우려가 있다.

어쨌든 그 말 한마디 때문에 P씨의 그날 스코어는 엉망진창이었다. 무심하게도 K씨는 자신의 말 때문에 P씨가 라운딩을 망친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멘탈 스포츠인 골프에서는 라운딩 도중의 말 한마디가 이처럼 중요하다. 그래서 가급적 타인의 플레이에 말을 아껴야 한다. 실제 골프를 아주 잘 치는 사람이 아주 못치는 사람과 라운딩할 때도 경기 도중에는 별로 조언을 안 한다.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와도 꾹꾹 참는다. 그런 다음, 라운딩이 끝난 직후, 또는 17번 홀 또는 18번 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가만히 보니까 말이야, 당신 스윙은 이게 문제인 것 같아. 이렇게 한번 해보는 게 어때.”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훌륭한 조언이라도 경기 도중 하게 되면 플레이어의 심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골프를 치면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마는, 실제로 골프장에서는 말이 정말 많다. 친구끼리 또는 직장 동료끼리 라운딩을 하다보면 이 얘기 저 얘기 하기 마련이다. 너무 크게 떠들어 앞 뒤 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골프장에서 경기 도중 주고 받는 말이 행여라도 플레이에 악영향을 끼치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내기 골프를 할 경우, 일부러 김을 빼거나 기를 죽이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절제를 하면 재미로 넘길 수 있지만 장난이 지나치면 곧바로 매너 나쁜 골퍼로 낙인 찍힐 수도 있다.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으며, 같은 말이라도 때를 골라서 해야 한다는 것을 골프를 하면서도 절실히 느낀다.

입력시간 : 2004-03-1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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