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 이야기] 아직도 골프를 잘 모릅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마당에 서면 앞쪽 좌우에 산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왼쪽에 있는 산을 안산이라고 불렀고, 오른쪽의 산을 연대봉 또는 봉호라고 불렀습니다. 안산과 연대봉 사이로 더 멀리에는 삼태봉이 있었습니다. 삼태봉 뒤쪽에는 한라산이 보였습니다.

나는 연대봉에 올라가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연대봉에 올라가면, 우리 동네 뿐 아니라, 신동, 굴포, 남선, 백동, 송월, 송정, 상만 등 많은 마을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바다도 보였고, 인근에 있는 섬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 마당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많은 산들도 보였습니다. 나는 연대봉에 올라가면 언제나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하였습니다. 산 너머에 있을 세계에 대하여 궁금해 하던 버릇은 면 소재지에 있는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서울로 왔습니다. ‘지게 지기 싫거든 면서기나 하라’시던 어머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울로 왔던 것입니다. 산 너머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를 궁금해 하다가 마침내 서울까지 왔던 것입니다. 서울에 와서 처음에는, 이제는 더 이상 가 볼 곳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온지 약 10개월이 지나서 남산에 올라갔습니다. 남산에 올라가서 보니 서울이 참으로 넓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북쪽에는 남산보다 훨씬 높은 북한산이 있고, 남쪽에는 관악산이 있고, 동쪽에는 수락산과 불암산이 있으며, 그 뒤쪽에는 천마산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후 대학을 마칠 때까지 북한산에 자주 올랐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아직도 가보아야 할 곳이 끝없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들과 술 마시기 보다 해외여행 다니기를 더 좋아했었습니다. 해외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지금까지 보아온 세상보다는 아직도 보지 못하고 있는 세계가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연대봉에 올라가다가 쪽 뻗은 소나무를 보면, 톱으로 베어내어 낫으로 팽이를 깎아 놀던 내가, 골프를 알게 된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골프를 하기 시작한 지가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만큼 오래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그 사이에 언필칭 골프대중화에 기여한답시고 이곳 저곳에 골프에 관한 글을 썼던 일도 있었습니다. 20여년을 하루 같이 연습장을 다닌 결과 언더파를 치기도 하였습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골프를 잘 한다는 칭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골프를 잘 모릅니다. 골프가 잘 되어 나도 이제는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랑하려 할 때, 갑자기 영문도 모르게 골프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골프에 쏟아 부은 정성을 내가 익히고 싶어 했던 판소리에 기울였더라면 아마도 지금쯤은 명창의 반열에 올랐을지도 모를 일인데 하면서, 골프를 알게 된 것을 후회하곤 하였습니다. 그런 날 골프장에 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나는 캐디백을 아파트 베란다에 내동이치면서 지금부터는 골프를 그만두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다가도 사나흘이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식구들 몰래 캐디백을 가지러 베란다로 갔습니다. 나는 베란다로 나가면서 “ 골프는 내게 있어서 공기와 같은 존재다”고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골프에 대하여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을 잘 압니다. 또한 누군가가 내게 골프에 대하여 말을 걸어오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하여야 하나 하고 걱정을 합니다. 이런 내가 며칠 전 원고청탁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사절할 수밖에. 그럼에도 기자는 나에게 자꾸만 부탁을 했습니다. 결국 나는 쓰겠노라 승낙을 하고 말았습니다. 기왕에 글을 쓰겠다고 승낙하였으니 나는, 앞으로 내가 쓰는 글들이 어떤 모습일까를 그려보지 않을 수 없어 묵상합니다.

“ 한 사람의 인생을 완성시키는 것은 탑을 세우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커다란 탑을 세운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탑을 세운 사람도 있습니다. 또 거의 완성되어 가는 것을 도중에서 그만 포기해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높은 탑도 있고, 낮은 탑도 있으며, 가느다란 탑도 있는가 하면, 훤칠한 탑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탑, 보기싫은 탑, 균형이 잘 잡힌 탑, 좌측으로 기울어진 탑, 우측어깨가 올라간 탑, 그리고 구부러진 탑, 혹은 아주 엉터리로 만들어진 탑도 있습니다.”

소동기 : 변호사·골프 칼럼니스트

이번 주부터 연재를 시작하는 '소동기의 골프 이야기'의 필?소동기씨는 변호사 입니다. 그러나 소 변호사는 빼어난 골프 칼럼니스트로 정평이 나 있는 골프 애호가이기도 합니다.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과 골프 지식이 어우러진 소 변호사의 골프와 인생 이야기에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바랍니다.


입력시간 : 2004-03-1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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