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 이야기] 명문골프장의 조건


지난 2월10일, 난생 처음으로 금강산에 갔습니다. 이스트밸리골프장에서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는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전직원이 금강산으로 연수를 가게 됐는데, 저에게 강의를 부탁했던 것입니다. 입국 수속을 밟는 통일전망대에서 주변을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이 적당히 불고 있었기 때문에, 비로봉, 감호, 해금강이 바로 눈 앞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감호에서부터 통일전망대 근처까지 뻗어있는 백사장과 그 오른쪽의 쪽빛바다, 왼쪽의 황토빛 민둥산천을 바라보고 있자니, 2년 여 전에 갔던 세인트앤듀르스의 올드코스 주변 모습이 오버래핑됐습니다.

세인트앤드류스의 올드코스는 디자인이나 레이아웃을 하는 데에 사람의 손이 거의 작용하지 않은 곳입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이 코스를 수 세기 동안 세월의 풍랑을 거쳐 오면서 자연이 만들어낸 위대한 창조물이라고 말합니다. 이 코스의 설계는 신이 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코스를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 그 이유로 자연과의 조화를 꼽습니다.

해상호텔에 짐을 푼 뒤 온정각으로 가는 길에 현대아산의 직원이 앞 쪽에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곧 골프장이 건설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안양골프장이 떠올랐습니다. 몇 해 전 안양골프장은 골프장 하나를 새로 지을 만큼 돈을 들여 개조됐습니다. 사실이 아니겠지만 그룹총수가 세계 100대 골프장의 반열에 올려놓으라는 특별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라던 소문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변모된 안양골프장에서 조차도 미스 월드를 만들기 위하여 키가 다섯자 밖에 되지 않는 여자 아이를 성형수술해 놓았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인트앤드류스의 올드코스와 달리 너무 정원화되어 있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마다 안양골프장이 세계 100대명문에 들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탓에 해상호텔 인근에 골프장을 만들기 보다는, 삼일포와 감호주변의 버려져 있는 땅이 더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녁 식사 후 저는 이스트밸리 골프장 직원들에게 명문이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조건에 관하여 간단히 몇 마디 하였습니다. 대강 이런 말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보통 골퍼들은 명문 골프장의 평가기준으로, 회원권가격, 진행상태, 코스관리상태, 폐쇄성, 접근성, 전통, 코스의 난이도, 스코어의 호불호, 주변 사람들의 평판 등을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골프잡지 등에서는 세계 100대 골프장을 선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평가기준에 따랐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1) 샷의 가치-각 홀들이 얼마나 다양한 위험과 보상을 동시에 제공하는가, 플레이어의 기량 거리 정확성 등을 얼마나 다양하게 테스트할 수 있는가.

(2) 경기성-로핸디캐퍼에게 얼마나 도전적인 코스인지 또한 하이핸디캐퍼에게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공격루트의 선택을 통해 골프를 즐길 수 있게 했는가.

(3) 코스의 난이도(resistance to scoring)-스크래치골퍼가 백티에서 플레이 했을 때의 난이도.

(4) 디자인의 다양성-파3, 파4, 파5의 각 홀들의 길이, 구조, 해저드의 배치, 그린의 형태 및 경사 등의 다양성.

(5) 기억성(memorability)-첫홀부터 마지막 홀 그린까지의 티, 해저드, 그린, 조경, 지형들의 디자인이 개별적 독자성을 갖고 있는가, 개별적 독자성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있는가.

(6) 심미성(esthetics)-라운드의 즐거움을 추가하는 코스의 경관적 가치이다.

(7) 코스의 관리상태-티, 페어웨이, 그린의 잔디 상태

(8) 전통

이스트밸리골프장에서 일하는 여러분! 저는 많은 골퍼들이 이스트밸리골프장이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골프장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스트밸리골프장이 명문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아직 명문인지의 여부를 가릴만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스트밸리골프장이 몇 년 뒤에도 여전히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대한민국의 최고명문골프장이 될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입력시간 : 2004-03-24 22:3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