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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되돌리기] 인생
역사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세계사는 세계심판이다.”혹은 “역사란 세계의 재판소이다.” 이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말이다. 즉, 나치의 대량학살도 피노체트의 독재도, 5.16 군부 쿠데타도 결국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듯이 역사의 정의와 신념에 배치되는 그 어떠한 반동과 불의도 종국에는 불손한 실체를 드러내 역사의 심판대에 올라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언제나 적극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정의의 판결을 내려준다고 믿을 수 있을까? 헤겔이 ‘절대이성이 지배하는 역사’를 운운했을 당시는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를 중심으로 한 빈체제를 통해 반동적 보수주의의 왕정복고 바람이 불 때였다. 힘겹게 이룩해낸 혁명의 이념이 완전 물거품이 되자 인간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그래도 역사는 정의 편에 서있겠지”하는 부질없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헤겔도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에 역사의 심판이 있으리라고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실상 역사는 권력자의 편에 서있는 때가 허다하고 지루하리만큼 더디게 이루어지는 ‘역사의 심판’은 정의를 수호하고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에 입각해 자행되는 권력자들의 독단과 독선을 눈감아 주기 일쑤였다. 인류가 목도한 역사는 결코 정의의 편이 아니었고 오히려 불의에 억압받는 이들을 농락할 뿐이었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인생>은 잔인한 역사의 갈퀴가 인간의 삶을 수 차례 할퀴고 지나가도 아픈 상처를 스스로 추슬러야만 하는 민초들의 애달픈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공산당과 국민당과의 내전에서부터 공산당에 의해 치러진 인민대숙청, 마오쩌둥이 추진한 경제성장정책인 대약진운동, 그리고 전통적인 가치와 부르주아적인 모든 것을 배격하는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주인공 부귀의 삶을 통해서 광기와 폭력으로 물들여진 중국의 현대사를 관통해나가고 있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부귀는 그림자극으로 생계를 유지해나간다. 국공내전시기에 국민당과 공산당 앞에서 그림자극을 하며 삶을 연명해오던 부귀는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고 그 곳에서 공산당에 의한 지주 숙청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지켜본 그는 몰락한 지주로서 삶의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딸이 대약진운동이 한창일 때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그의 아들마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감행하던 홍위병의 희생양이 되자 삶의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농간에 좌절하고 만다. 부르주아적 요소를 축출하고자 하는 어린 홍위병들이 구시대의 유물과도 같은 늙은 의사들을 모두 내?고 병원을 차지하자 주인공의 아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희비극이 교차되는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이다. 바로 1966년 마오쩌둥의 오판에서 시작된 문화혁명의 우습고도 슬픈 현실을 풍자한 부분이다.



문화혁명은 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습관을 타파한다는 이름 하에 대대적인 인민숙청을 벌여나간 마오쩌둥의 극좌파운동이었다. 하지만 ‘조반유리(造反有理)’, “모든 반란에는 나름대로 정당한 도리와 이유가 있다”라고 외치며 패악을 저지른 이들은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 후 20년이 지나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을 마오쩌둥의 오류라고 판단을 내렸지만 그 땐 이미 수 백 만명이 숙청을 당하고 국가와 개인 모두가 피폐한 후였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찢겨지고 짓밟힌 개인의 삶을 보여준 영화 <인생>. 비록 고약한 역사는 인간의 편에 서지 않았지만 폭력의 그 시대는 이미 역사의 심판대에 올랐다. 물론 역사의 판정이 오래 걸려 한 개인의 일생에서 그 영광의 순간을 맛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역사의 눈은 결코 진실을 외면하지는 않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


입력시간 : 2004-03-2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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