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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엉망진창 프로농구 어디로 가나


한국 프로농구가 어처구니 없는 ‘자해’의 수렁에서 헤어나올 줄 모르고 있다. 겨울 내내 경기장을 찾아 열렬한 응원을 펼쳐 준 농구 팬들은 물론이고, 땀과 투혼으로 열심히 뛰어다녔을 뿐인 선수들에게마저도 배신감을 안겨 주며 존립 기반을 스스로 갉아 먹고 있다.

한 시즌의 결실을 거둬 들이는 플레이오프 4강전이 3월20일 개막됐지만 잔칫집에 곡소리가 함께 울리는 격이다. 이틀 전인 18일 대구 오리온스와 창원 LG의 6강 3차전 오심 논란이 남긴 상처다. 프로농구판에 다시 한번 덧난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더욱 곪아 터질 조짐까지 보인다.


▲특정 구단을 두 번 죽이다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대구 오리온스-창원
LG 전에서 LG 토마스(25번)이 골밑슛을 노리다
오리온스 레이저의 파울로 공을 놓치고 있다.

오심 논란이 빚어진 대구 오리온스와 창원 LG의 플레이오프 6강 3차전. 1승1패로 나란히 맞선 두 팀은 4강 진출 티켓을 따기 위해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엎치락 뒤치락 전개되던 경기는 4쿼터 막판 대구 오리온스의 승리로 굳어지는 듯했다. 76대 73으로 앞선 종료 12초 전 오리온스의 김병철이 골 밑을 돌파하며 던진 레이업 슛이 림을 살짝 구르며 흘러나오는 것을 바비 레이저가 팁인 슛, 골로 연결시킨 순간만큼은 분명 그랬다.

하지만 이 슛은 골로 인정되지 않았다. 심판은 실린더 룰(림과 수직으로 연결된 림 위의 가상 공간인 실린더에 볼이 머문 상태에서 공격자가 건드리면 안 된다는 농구 규칙) 위반을 판정 이유로 내세웠다. 오리온스 측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경기는 속개됐고, 결국 연장전 끝에 창원 LG의 84대 81 승리로 끝났다.

사태는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밤새 억울한 패배를 곱씹은 대구 오리온스 구단측이 19일 KBL(한국농구연맹)에 ‘심판 판정은 오심을 넘어 승부 조작 의혹까지 있어 경기 결과에 승복할 수 없으며 재경기를 요구한다’는 제소를 한 것. 오리온스 측은 또한 ‘해당 심판에 대한 중징계와 KBL의 납득할 만한 조치가 없을 경우 KBL의 모든 활동 불참은 물론 극단적인 상황(팀 해체)까지 고려하겠다’는 초강경 대응 방침도 천명했다. 오리온스 측이 주장한 오심 사례는 4쿼터에서만 바비 레이저의 팁인 슛 상황을 포함해 6차례나 된다.

다급해진 KBL은 경기 녹화 화면을 분석한 뒤 “4쿼터 오리온스가 67대 66으로 앞선 상황에서 LG 토마스가 엔드라인을 넘어 패스하고, 이어진 공격에서 볼이 페리맨의 발에 맞고 나갔을 때 LG의 공격권을 선언한 것은 오심”이라며 오리온스의 주장을 일부 인정했다. 또한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는 바비 레이저의 팁인 슛 노골 판정에 대해서도 당일 경기에 파견됐던 기술위원은 ‘오심’으로 보고했다.

오리온스 측이 초강수를 두는 것은 비단 이번 오심 사태 때문만이 아니다. 오리온스는 지난해에도 챔피언 결정전 5차전에서 리드하고 있던 4쿼터 종반 전광판 시계가 15초간 멈추는 ‘있을 수 없는’ 사건으로 결국 역전패, 승리를 빼앗기다시피 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당시 KBL은 명백한 실수를 인정하고 재경기를 결정했으나, 오리온스 측이 프로농구 전체를 위한 대승적 결단으로 재경기를 자진 포기함에 따라 사태는 그쯤에서 마무리됐다. 오리온스 측이 “올해는 결코 양보할 수 없다”며 흥분하는 것도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KBL은 현재 오심은 인정하지만 그로 인한 재경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경기마다 심판의 실수는 있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오심을 이유로 재경기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2년 연속 한 해 농사를 도둑 맞은 구단측과 경기 외적인 변수로 승부가 갈리는 황당한 농구를 보는 팬들에게는 옹색한 변명인 것이 사실이다. 창원 LG의 팬이라는 한 네티즌은 “응원하는 팀이 이기긴 했지만 심판의 오심이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아 민망하다”며 씁쓸함을 나타냈다. 이번 오심 사태에 격분한 대구 오리온스 팬들도 재경기를 요구하는 조직적인 서명 운동에 들어간 상태다.

▲꼬리 문 파문과 물타기

심판 판정을 둘러싸고 코트 안에 쌓여 가는 불신 외에도 KBL이 미숙한 리그 운영과 속 보이는 행정으로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20일 프로농구 사상 초유의 몰수게임 사태가 일어나자 KBL은 파문을 일으킨 당사자인 안양 SBS 구단에 제재금 1억원을 부과하고 심판진 등에게는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리며 비난 국면을 피해 나갔다. 하지만 KBL은 한달여만에 슬그머니 “프로농구 올스타전을 맞아 화합 차원에서 경기 중단과 관련한 징계를 경감한蔑굅?발표, 제재 결정을 유야무야 뒤집어 버렸다.

화합을 내걸었지만 사실 이 결정 배경에는 KBL의 낯 부끄러운 실상이 숨어 있었다. KBL 규약에 몰수게임과 관련한 규정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이를 따지고 드는 안양 SBS 측을 무마할 방법이 딱히 없었던 것이다.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3월7일)에서 팬들의 공분을 자아냈던 ‘타이틀 밀어주기’ 파문에 대한 KBL의 대응도 미덥지 못했다. 문경은(인천 전자랜드)과 우지원(울산 모비스)의 3점슛왕 과열경쟁, 토종 빅맨 김주성(원주 TG)의 블록슛왕 등극 여부를 둘러싸고 희대의 ‘코미디 농구’가 자행됐지만 KBL은 철저한 진상 조사 없이 두 부문의 개인상 시상을 유보하는 선에서 파문을 봉합했다.

팬들을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이튿날인 8일 전격적으로 치러진 ‘농구 대통령’ 허재(원주 TG)의 은퇴 발표다. 허재의 은퇴는 이미 예고돼 있던 일이지만 이날 행사는 어딘가 ‘기획’의 냄새를 지울 수 없었다. 바로 전날 벌어진 농구판의 추태에 대한 팬들의 들끓는 여론을 물타기 하려는 의도로 급조된 게 아니냐는 설득력 있는 분석도 나왔다.

원주 TG 구단측과 KBL은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지만 은퇴 당사자인 허재 자신도 사전에 몰랐던 이날 은퇴식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아울러 타이틀 밀어주기 파문도 농구 대통령의 떠나는 길에 묻히고 말았다.

이번 시즌 프로농구는 유달리 스캔들이 많이 터진 한 해로 기록될 게 분명해졌다. 문제는 농구의 앞날이다. 사건 사고가 터지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충 덮어버리고 지나가는 작금의 KBL 식 대응으로는 한국 농구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때문에 농구를 진심으로 아끼는 팬들은 준엄하게 묻고 있다. KBL은 대체 언제쯤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추상 같은 운영 주체로 거듭날 것인가를.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입력시간 : 2004-03-2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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