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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 여행] 3남매 가수(上)
장미리, 장은아, 장재남 솔로가수로 각기 폭넓은 인기

3남매 가수인 장미리, 장은아, 장재남. 가족 전체가 팀을 이뤘던 '작은 별 가족'이나 남매 팀'김 트리오', '아시아나'와는 달리 이들은 한 팀이 아닌 각기 솔로 가수로 히트 가수가 되었지만, 뒤늦게 3남매임이 밝혀져 화제를 모았다.





맏이 격인 장미리는 낭랑한 고음의 보컬로 노래한 ‘ 아 어떻게 할까', ‘ 말 전해다오' 등 컨튜리, 소울, 팝, 락 등 시대를 앞섰던 다양한 장르의 노래로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여가수였다. 공식 가수 데뷔가 가장 늦었던 장재남은 '제2의 송창식'불릴 만큼 외모, 창법이 송창식과 흡사했다. 그는 허스키 짙은 고음으로 서민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텁텁한 보컬로 대화식의 노래 ‘ 빈 의자'와 ‘ 사람을 찾습니다'를 불러 70년대 말 젊은층의 폭넓은 인기를 모았다. 언니, 오빠와 달리 맑은 중음이 매력적이었던 막내 장은아는 여고 졸업 후 ‘ 시모나',‘ 맛댕기' 등 CM송을 부르다가 78년 초 ‘ 고귀한 선물'을 시작으로 ‘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 오늘 밤 내게' 등 맑은 노래로 사랑을 받았던 포크 가수였다.

섬유 사업을 했던 부친 장동옥씨와 생활력이 강해 가장 역할을 했던 모친 임수덕씨 사이의 5남 3녀 중 다섯째였던 장미리는 1948년에, 장재남은 여섯째로 1949년에 그리고 막내인 장은아는 1956년에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장미리의 본명은 장숙자, 장은아는 장숙희이다. 장재남은 본명이다. 형제 자매들은 모두 장성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성장했지만 막내 장은아는 생후 3개월부터 어머니와 함께 서울 을지로에서 성장했다.

3남매의 성격은 노래만큼이나 판이했다. 장미리는 보수적이고 재남은 사교적이고 장은아는 외향적인 성격이다. 장재남은 미술에 재능이 있어 아르바이트로 만화 캐릭터 '땡이'를 그려 히트를 시켰을 정도. 또한 이승만 대통령 성대모사가 뛰어났던 재주꾼이었다. 그는 서라벌 고를 졸업한 후 60년대 말부터 장미리와 함께 미8군 밴드의 멤버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72년 군 입대 후 공백기를 가지고 70년대 중반 이후 지방 밤무대에서 언더 그라운드 가수 생활을 했다.

장미리는 어릴 시절부터 노래자랑 대회에 뽑혀 나갈 만큼 노래 실력이 출중했다. 카니 프란세스, 낸시 윌슨 음악을 좋아했던 그녀는 성만여상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다. 66년 여고를 졸업하며 가수 데뷔를 꿈꿨지만 부친의 반대에 부닥쳐 둘째 오빠 장재의를 매니저 삼아 허락을 얻어냈다. 첫 무대는 미도파, 세운 등 초기 음악살롱 무대. 깜찍한 컨트리 송을 불러 젊은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이때 서수남의 눈에 들어 67년 7월 컨튜리 밴드 올 오프리쇼 멤버로 스카웃 되면서 8군 무대에 진출했다. 이후 많은 미8군 무대를 통해 ‘ 한국의 아레사 프랭클린'로 성장했다. 이후 그녀는 68년부터 1년 간 일본, 대만, 말레이지사, 싱가폴. 태국, 라오스 등 동남아 8개국 순회공연에 오르며 국제적인 톱 가수를 꿈꿨다.

워커힐 전속 악단장, MBC TV 전속 악단장을 역임한 여대영과의 만남은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외국 곡만을 노래했던 그녀는 대중가요를 취입하며 일반 무대에 데뷔한 것이다. 이 때가 69년 11월. KBS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로 슬로우 고고풍의 노래였던 ‘ 아빠 선생님'을 시작으로, ‘ 밤은 싫어요' ‘부부운전사' ‘찾아 온 바닷가' ‘ 첫 경험'을 연이어 발표했다. 탁 트인 고음의 매력적인 허스키 창법에 귀엽고 앳된 얼굴로 항상 웃음을 머금고 블루진에다 원형의 선글라스 착용한 그녀는 대중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세미클래식에서 팝송, 가요, 민요, 칸소네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완전하게 소화해 음악성 있는 여가수로 인정을 받았다. MBC ‘ 크라운 쇼'를 출발로 TBC ‘원 투 드리 고', 동아방송의 ' 밤의 그룹 사운드' 등 수 많은 TV쇼에 출연하고 록 그룹 he5와 함께 미8군 활동을 병행했다. 70년 9월 21일 시민회관에서 열린 제 6회 동양방송주최 방송가요상 시상식. 그녀는 ‘ 아 어떻게 할까!'로 신인가수상을 수상하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71년부터는 댄스 풍의 가수로 거듭나며 인기 퍼레이드를 벌였다.

높은 인기는 항상 구설수를 동반하는 법.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 갔던 그녀는 73년 6월 영사운드와 함께 만든 별도의 음반에서 안길웅작곡의 '말 전해다오' '추억'등 듣기 편한 록 계열의 5곡을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헌데 73년 11월 부산 TBC TV '가요대전' 출연 후 연락도 없이 MBC라디오와의 공개 방송 등 예정된 스케줄을 펑크 내자 증발 소동까지 터졌다. ‘ 3통의 협박편지와 전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언론은 ‘ 장미리 消?이라는 제하로 대서특필했다. 또한 히트곡 '아 어떻게 할까'를 작곡한 작곡가 안길웅과 지방 쇼를 주관했던 쇼 단장과의 황당한 스캔들까지 불거져 나왔다. 당시 좋은 노래로만 인기를 유지할 수 없는 환경이 힘겨웠던 그녀는 한동안 고향으로 내려가 머물렀던 것.

74년 12월, 한강변의 한 중국집에서 투코리안스의 손창철의 주선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대구에서 자동차 부품업체인 '아세아상사'를 운영했던 김민삼씨와 만나 75년 초 약혼을 하고 소리 소문 없이 치렀던 식이었다. 75년 10월 MBC TV '토요일 토요일밤에' 출연을 마지막으로 모습이 보이지 않자 “ 이민을 갔다”, “삭발을 하고 여승이 됐다”는 등 온갖 소문이 난무했다. 결혼 후에도 가수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보수적인 시댁의 반대로, 은퇴를 한 사실조차 다음해 7월에야 알려졌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 2004-04-1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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