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의 진실

[영화 되돌리기]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연애와 결혼의 진실

20세기가 이념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바야흐로 로맨스의 시대. 소개팅과 미팅이 난무하고 연애와 실연이 교차되는 이 불확실한 시대에 짝짓기를 향한 인간들의 열망은 그칠 줄 모른다. 이러한 남녀상열지사에 몰입하고픈 사람들이 언제나 주술처럼 외치는 말이 있다. 바로 베이스스의 노래 제목이자 영화 제목인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다.

사실 좋은 사람을 소개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좋은 사람’에 대해 숱한 환상을 품고 있다거나, 자신도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더욱 힘들다. 그런 사람에겐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 만큼이나 어려운 게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델포이 신전 담벼락이 쓰여 있던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는 소크라테스 철학의 근본이면서 동시에 솔로들의 연애 철칙이 아닐까?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 아닌데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영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는 이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만 건져도 그만인 영화이다. 삶이 무미건조한 29세 노처녀 커플 매니저 효진. 두 발 달린 동물은 웬만하면 짝을 지어줘야 한다는 강한 직업의식을 갖고 있는 그녀는 정작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신세이다. 여자가 서른이 넘어 근사한 킹카를 만나 결혼할 확률이 테러리스트의 총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는 저주 같은 말이 횡행하는 때 고작 남 연애사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그녀에게 어느 날 골칫덩이 고객이 맡겨진다.

왠지 결혼이나 여자에게는 통 관심 없어 보이는 남자 현수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춘향식으로 결혼 정보업체에 가입한 회원이다. 현수에게 여자를 소개해야 하는 과정에서 효진은 귀여운 듯, 칠칠치 못한 듯, 어딘가 모자란 듯한 인상을 풍기게 되고, 영화는 자칭 보수적이면서 모순덩어리인 남자 현수와 매사에 서투르고 실수투성이인 여자 효진 사이에 묘한 사랑전선이 형성되면서 무덤덤하고 심심한 결말로 향해간다.

‘보수적인 남자와 실수투성이의 여자’의 만남에는 사랑과 연애에 관한 두 가지 진실이 담겨 있다. 남자는 결혼할 때가 되면 노모를 모시고 김장을 담글 여자를 찾게 되고, 언제나 자신감으로 꽉 차 있는 그녀보다 한 구석 정도는 무방비상태로 맹~하게 풀려 있는 여자를 편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영화 속에서 현수의 옛 애인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항상 휴대전화를 붙들고 사는 바쁜 커리어 우먼으로 똑 부러지는 말투에 섹시한 자태, 자신감 있는 몸놀림으로 어리숙해 보이는 효진에게 묘한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그런데 팔딱 팔딱 뛰는 생선처럼 섹시한 그녀는 왜 30대의 현수를 사로잡지 못했을까?

미국 독신녀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 ‘섹스 앤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의 옛 애인이 나이 어린 여자와 약혼을 하자 뒤통수를 맞은 듯한 캐리가 혼잣말을 한다. “내가 그를 길들이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길들이지 못했을 뿐”이라고. 즉, ‘섹스 앤 시티’의 남자 빅이나 영화 속 현수는 성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위협적이고 돌출적이지 않으면서 자신이 힘들이지 않고 쉽게 길들일 수 있는 상대와 결혼을 하려고 한다. 결혼이란 원래 필부필부, 장삼이사의 일인 것을. 튀지 않고 무난한 이들이 아무래도 결혼하기에 편한 상대이다.

로맨틱 코미디로서 그 어떤 차별화도, 장르 파괴의 과감함도 선보이지 못한 영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하지만 결혼 상대자를 구하고 있는 과정이라면 무뚝뚝하지만 성실해 보이는 현수와 허술해 보이지만 순진한 효진의 연애성공담을 관찰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과연 자신이 결혼하기에 무난하고 편한 상대인지 곰곰이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4-15 13:28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