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오거스타내셔널에 대한 의문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을 설립하고 마스터스대회를 창립한 보비 존스는 1929년 페블비치에서 열린 미 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가 1라운드에서 21살 난 무명의 자니구드맨에게 패했다. 존스는 그 때 고향인 조지아로 돌아가지 않고 페블비치 주변에 있는 몇 개의 골프장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알리스터 맥켄지라는 코스설계 전문가를 만났다. 평소 맥켄지의 골프 코스에 관심을 갖고 있던 존스는 그에게 새로운 골프코스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듬해 아마추어로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존스는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주의 경계 지점에 있는 과수묘목원을 골프장 부지로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부지 매입은 존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뉴욕 금융업자인 클리포드 로버츠의 도움을 받았다.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은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골프클럽 중 하나다. 멤버쉽은 오직 클럽의 초청에 의해서만 주어진다. 또 수십 년 동안 독재형 회장에 의해 운영됐다. 바로 클리포드 로버츠다. 만약 로버츠가 어떤 회원에게 ‘당신은 더 이상 회원이 아니다’라고 하면 그 회원은 그 것으로 끝이었다. 어떤 항의나 호소도 소용 없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회원이 오거스타내셔널에 하룻밤을 묵으며 골프를 즐기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교환원이 로버츠에게 전화를 돌려주었는데, 로버츠는 그에게 ‘더 이상 당신은 회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깜짝 놀란 회원이 그 이유를 묻자 로버츠는 회비를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 회원이 자신은 청구서를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하였으나, 로버츠는 틀림없이 회비를 납부하지 않았다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오거스타는 한 때 클럽하우스 앞에 세워져 있는 깃대에 클럽을 상징하는 기와 회원이 동반할 수 있는 비지터의 숫자를 알리는 기를 매달았다. 검은색 기는 회원이 한 사람의 비지터만, 붉은색 기는 회원이 세 사람의 비지터를 동반할 수 있다는 표시었다. 한 회원이 붉은색의 기를 보고 오후 라운드에 세 사람의 비지터를 동반하고 오거스타를 찾았는데, 클럽하우스에서 나오는 순간 붉은색 기가 검은색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즉시 클리포드.로버츠를 찾아갔다.

“클리프, 문제가 생겼네, 세 명의 비지터가 이미 티오프를 준비하고 있다네.”

그러나 로버츠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하였다고 한다.

“이해할 수가 없네. 도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그뿐이 아니었다.

프랭크 비어드는 1977년 CBS의 골프해설가로, 또 골프다이제스트의 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었다. 그 무렵 어느 칼럼에서 오거스타내셔널과 마스터스에 대해 약간 비판적인 글을 썼다. 로버츠는 그 글을 읽고는 당장 CBS의 골프담당프로듀서인 프랭크 쳐키니언에게 전화를 걸었다.

“프랭크, 비어드가 오거스타에 있는 것도 싫고, CBS에 있는 것도 싫다네.”

그 후 비어드는 오거스타에서 일하지도 못했고, 또 CBS에서 일할 수도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만 해도 CBS는 오거스타내셔널에 엄청난 중계료를 지불하며 먀스터스 대회를 독점중계하고 있었다.

아이젠하워 전대통령도 오거스타내셔널의 회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거스타를 좋아해서 대통령 재임 중 1년에 100여 차례 오거스타에서 플레이할 정도로 매니아였다. 그런데 그가 17번홀에서 티샷을 하면 언제나 페어웨이 중앙에 있는 소나무에 그의 티샷이 걸쳤다. 그래서 그는 로버츠에게 몇 번이나 그 소나무를 베어버리라고 요구했다. 로버츠는 대통령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대신에 대통령의 노력을 감안하여 그 나무에 ‘Ike's Tree’ 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로버츠 같은 독재자가 운영한 오거스타내셔널이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마스터스대회를 스폰서도 없이 치러왔는지 늘 궁금했다. 그래서 94년에는 일부러 마스터스대회를 참관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입력시간 : 2004-04-1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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