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패기 찬 동료들과 코칭스태프 환대 속에 주전 1루수 맹활약30홈런 목표 향해 연일 '펑펑'… 내친 김에 챔피언 반지 욕심도

<메이저리그> 플로리다로 간 빅초이 '야망의 계절'
젊고 패기 찬 동료들과 코칭스태프 환대 속에 주전 1루수 맹활약
30홈런 목표 향해 연일 '펑펑'… 내친 김에 챔피언 반지 욕심도


'30홈런 터뜨리고 월드시리즈 챔피언 반지도 끼고.'

미국 프로야구 플로리다 말린스의 ‘빅초이’ 최희섭(25)은 올 시즌을 앞두고 두 가지 야망을 가슴에 품었다. 하나는 대외적으로 겸손하게 밝힌 20홈런 목표와는 달리 내심 장거리포의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는 30홈런 고지에 오르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친 김에 월드시리즈 챔피언 반지까지 끼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갓 2년차가 된 초보 빅리거에게는 다소 벅찬 듯했던 두 가지 꿈이 시즌 개막과 더불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먼저 순전히 선수 개인의 능력에 따라 좌우되는 홈런 레이스에서 빅초이의 출발은 아주 좋다. 개막전 첫 타석부터 화끈하게 홈런을 신고한 최희섭은 이후로도 방망이를 매섭게 돌리며 쟁쟁한 거포들을 따돌리고, 양대 리그 통틀어 홈런 더비 2위권을 달리는 중이다. 비록 타율은 2할대 중반을 오락가락하지만, 4월17일 현재까지 기록한 7안타 가운데 무려 5개가 홈런일 정도로 최희섭은 ‘쳤다 하면 대포’라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또한 경기당 0.5개 이상의 아치를 그려 지금 같은 페이스대로라면 산술적으로 올 시즌 80개 안팎의 홈런이 가능하다. 물론 이 같은 엄청난 기록이 나올 리는 만무하겠지만 그만큼 최희섭의 초반 홈런 생산 페이스가 가파른 상승세인 것은 분명하다.

- 7안타 중 5홈런 '거포 본색'

다만 목표로 세운 30홈런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타율을 좀 더 끌어 올려야 하는 것이 숙제로 남았다는 지적이다. ‘모 아니면 도’ 식의 타격은 슬럼프를 쉽게 부를 수 있어, 자칫 장기간 홈런포가 침묵하기라도 한다면 주전 1루수 자리를 내줘야 하는 궁지에 내몰릴 수 있다. 162경기를 꾸준히 출장하는 붙박이 빅리거라도 30홈런을 넘기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지난해 시카고 컵스 시절처럼 띄엄띄엄 타석에 들어선다면 목표 달성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잭 매키언 감독이나 제프리 로리아 구단주 등 플로리다 말린스 수뇌부의 두터운 신뢰는 최희섭에게 든든한 원군이다. 두 사람은 지난 시즌까지 팀의 간판 선수 중 한 명이었던 데릭 리(시카고 컵스)를 내주며 데려온 최희섭의 ‘미래’ 가치를 높이 평가할 뿐 아니라 ‘현재’ 활약에도 대단히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빅초이가 타율이 높지는 않지만 팀 승리에 보탬이 되는 장타를 터뜨리고 있다”는 매키언 감독의 말이나 ‘초이(Choi)는 조이(Joy)’라는 재치 있는 비유로 최희섭의 가세에 기쁨을 나타낸 로리아 구단주의 발언 등에서 그런 속내는 잘 드러난다. 이들의 지원 속에 기복 없는 타격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최희섭의 30홈런 고지 등정은 그리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염소의 저주’에 시달려온 불운의 명문 구단 시카고에서 버림 받아 뜨거운 태양과 젊음이 넘실대는 플로리다 해변에 새 둥지를 마련한 것도 최희섭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다. 플로리다는 빅리그에 참여한 1993년 이후, 97년과 지난해 등 두 번이나 챔피언 반지를 낀 신흥 강호다. 구단 재정이 넉넉지 않아 거물급 스타들을 보유하지는 못하지만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의 패기와 팀워크를 최대 강점으로 내세우는 팀이다. 최희섭 같은 빅리그 신참에게는 그야말로 ‘딱’ 맞는 팀 컬러인 셈이다.

- 시카고 떠난 건 '전화위복'

플로리다는 지난 시즌 우승 후 빅리그 정상급 포수인 이반 로드리게스와 골든글러브 1루수 데릭 리 등 간판 스타들을 내보내 전력 약화가 우려되기도 했지만, 이런 전망을 비웃듯 올해도 심상찮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팀 당 10경기 정도를 소화한 17일 현재, 파죽의 7연승을 포함해 8승2패로 양대 리그 전체 1위의 승률을 기록중이다.

현재 성적이 단순한 돌풍이나 운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경기 내용을 들여다보면 잘 나타난다. 우선 한 시즌의 대장정을 치러내기 위해 가장 바탕이 되는 전력인 투수력이 빼어나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인 조시 베킷을 비롯, 브래드 페니, 칼 파바노 등 젊은 선발 투수진이 모두 1점대 방어율의 안정적인 피칭을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차지한 또 다른 영건 돈트렐 윌리스는 2경기서 단 한 점도 내주지 않는 완벽 피칭으로 방어율 0이라는 환상투를 이어가고 있다. 플로리다 선발진은 구위에 비해 경험이 부족한 탓에 못 미덥다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오히려 민망할 정도다.

투수력만 막강한 것이 아니다. 약관 스무 살의 나이에 ‘차세대 MVP’로까지 칭송 받는 미겔 카브레라와 마이크 로웰, 최희섭으로 이어지는 중심 타선의 파괴력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홈런포를 펑펑 쏘아대며 단박에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미겔 카브레라는 홈런 6개로 양대 리그 전체 1위를 질주중이다.

후안 피에르, 루이스 카스티요가 포진한 1~2번 타순도 비록 타율은 2할대지만 메이저리그 최고의 ‘테이블 세터’(높은 출루율과 진루 능력으로 중심 타선에 타점 기회를 부여하는 1~2번 타자)라는 평가에 걸맞게 변함없는 기동력의 야구를 펼쳐 보이고 있다.

- 플로리다 2연패 향해 순항중

이처럼 플로리다 말린스는 외형상 뉴욕 양키스나 보스턴 레드삭스 등 초호화 명문 구단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꽤나 내실 있는 라인업이 자랑거리다. 무엇보다도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쉬운 빅스타들의 물리적 결합이 아닌,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인화를 내세운 감독의 끈끈한 지도력 아래 화학적 결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최희섭 역시 우승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던 시카고 컵스보다 플로리다 말린스가 훨씬 더 편안하고 운동하기에 좋다고 곧잘 말한다. 매키언 감독이나 빌 로빈슨 타격코치가 최희섭을 살갑게 대하며 꾸준한 관심을 내보이는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빅초이가 얼마나 예뻤으면(?) ‘좋다’ ‘잘 한다’ 등 한국말을 애써 배워가며 그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양념을 칠 정도일까. 물론 최희섭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무리 없이 소화할 만큼 영어에 상당히 능통한데도 말이다.

플로리다 팬들이 ‘데릭 리가 누구인가? 우리에겐 희섭 초이가 있다’며 최희섭에 전폭적인 애정을 나타내는 것이나 유수의 스포츠 전문매체들이 대부분 호평하고 있다는 점도 최희섭의 방망이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월드시리즈 2연패를 노리는 패기의 플로리다 말린스와 30홈런의 당찬 목표를 내건 2년차 왼손 거포 최희섭. 양자의 멋진 짝짓기가 올 시즌 내내 빅리그를 달굴 핫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30홈런과 챔피언 반지라는 ‘빅초이’의 두 가지 야망도 무르익고 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04-22 15:13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