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수' 찾기와 침묵


재판을 마치고 강남역에서 내려 사무실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우성아파트를 질러가고 있는데, 사내아이 둘이 자그마한 나무토막을 칼 삼아 열심히 회양목으로 된 울타리를 내리치는 칼싸움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자 아이들은 얼른 칼질을 멈추고 필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기들의 놀이를 그만두라고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들의 놀이를 나무라거나 방해할 의사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냥 아이들의 곁을 지나가면서 아이들의 이마에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무척이나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는 어릴 때 놀던 모습을 떠올라 추억속에 잠겨 사무실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이런 말이 들려 왔다.

“야, OO는 하느님을 믿지 않아야 천당에 간다고 그러더라!”

“무슨 소리야? 하느님을 믿어야 천당에 가는 것이지…”

“ 글쎄 말이야.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OO는 그게 아니래! ”

그렇게 말을 주고받던 녀석들은 칼놀이를 그만 두고 달음박질로 앞으로 달려갔다.

“하느님을 믿지 않아야 천당에 간데…. 무슨 소리야, 하느님을 믿어야 천당에 가는 것이지! ”

사무실로 오는 동안 코흘리게 아이들이 주고받던 소리가 내내 귓전에 맴돌았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끊임없는 궁금증이 이어졌다.

‘저 놈들이 천당이 무엇인지, 또한 하느님이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아이가 말한 OO라는 녀석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을까? 그리고 OO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같은 또래이이였을까, 아니면 어른이었을까? 그리고 만일 그 아이들이 지나가는 나더러 ‘아저씨, 제 친구가 하느님을 믿지 않아야 천당에 간다고 그러는데 그 말이 옳아요 틀려요?’ 하고 물었더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

지난 주말 모처럼 골프모임에 나갔다. 열 두명의 회원이 있는 ‘아치스’라는 이름을 가진 골프동호회 비슷한 모임이다. 모친의 생신을 맞은 할리라는 별명을 가진 이모 사장 대신에 방글라데쉬 다카에서 왔다는 게스트 한 분이 참석한 것을 빼고는, 회원 모두가 참석하였다. 운동을 끝나고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필자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바로 뒷팀에서 라운딩한 KBS 아나운서실의 조모 아나운서가, 라운딩중 거의 말을 하지 않는 필자에 관해 일행들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기 때문이다.

“소 변호사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말을 하지 않을까요?”

다카에서 온 게스트까지 필자가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바람에 주눅이 들어서 실력발휘를 하지 못하였노라고 엄살을 떨었다. 답변을 주저하고 있는데, ‘아치스’ 회장이 대신 답했다.

“몇 해 전 소 변호사에게 나도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러자 소변호사는 ‘가로세로 열아홉 줄의 조그만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반상의 싸움에도 수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하물며 골프는, 30여 만 평의 대지 위에 뚫려 있는, 지름이 겨우 10cm 밖에 되지 않는 열여덟 개의 구멍에, 볼을 집어넣는 게임이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넓은 반상의 싸움에도 수가 많다고 하는데, 골프에 있어서 수는 얼마나 많겠느냐? 그 수를 찾다 보니 말을 할 겨를이 없었다’고 대답하더라.”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연습장에서든 필드에서이든 골프를 하는 동안 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즉, 골프를 하는 동안 많은 골퍼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골프를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질문을 받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골프를 잘 할 수 있느냐고 물어오면, 우선은 “모르겠다”고 대답하고, 다시 질문을 받으면 “잘 모르겠다” 고 대답하며, 그래도 또다시 물어오면, 그 때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볼을 쳐보시오!”

입력시간 : 2004-04-2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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