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타이슨, 이종격투기에 도전'핵주먹' K-1무대 데뷔, 격투기 달인들과 '싸움지존' 가린다

"천하의 싸움꾼 K-1서 통할까?"
마이크 타이슨, 이종격투기에 도전
'핵주먹' K-1무대 데뷔, 격투기 달인들과 '싸움지존' 가린다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의 입식 타격계(말 그대로 서서 주먹과 발로 상대를 공격하는 경기) 이종(異種)격투기 대회 ‘K-1’ 무대에 잊혀져 가던 ‘주먹의 절대 지존’이 도전장을 던졌다.

호화사치를 일삼다 빈털터리가 됐고 온갖 구설수로 손가락질 받기는 했지만 주먹만큼은 아직도 지구촌 팬들에게 경외의 대상인 그다. 전 프로복싱 세계 헤비급 챔피언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38). 지난해 8월 법원에 개인파산 신청을 했을 정도로 곤궁한 처지의 그가 30억엔(약 330억원)의 계약금을 내건 K-1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계약금에서 대박을 터뜨린 타이슨이 승리의 기쁨까지 함께 누릴지는 미지수다. 복싱에서는 비록 핵주먹을 자랑했지만 발차기 등 다양한 기술이 허용되는 K-1식 대결은 처음 경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천타천 타이슨의 상대로 거론되는 선수들은 K-1 세계를 주름잡는 격투기의 달인들이다.

과연 타이슨은 K-1에서 새로운 신화를 쓸 수 있을 것인가. 스포츠 전문 케이블TV MBC-ESPN의 이동기 K-1 해설위원(격투기 웹진 FSN 대표)의 도움말을 통해 그 가능성을 짚어본다.

- 가공할 주먹, 발공격 방어가 관건

타이슨은 1986년 약관 스무 살의 나이에 WBC 왕좌에 올라 역대 최연소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라는 기록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후 WBA, IBF 헤비급 타이틀마저 차례차례 따내 통합 챔피언의 영광을 거머쥔다. 프로 통산 전적은 54전 50승(44KO) 4패로 전성기 시절에는 37연승에 18연속 KO승이라는 무시무시한 질주를 거듭했다. 당시 타이슨의 주먹 앞에 상대 선수들은 1라운드 시작하자마자 링에 쓰러지기 일쑤였다.

복싱은 K-1에서도 승부를 가르는 중대한 기술로 작용한다. K-1 무대에 비록 카라테 킥복싱 등 발차기를 중요시하는 종목 출신의 선수들이 많기는 하지만 복싱 기술이 떨어지는 선수들은 최고 반열에 오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마이크 베르나르도(남아공), 제롬 르 밴너(프랑스) 등은 뛰어난 복싱 실력만으로도 강자로 대접받는 선수들이다.

위력적인 펀치를 가진 복서는 다른 격투기 출신 선수들이 대결하기에 무척 거북한 상대다. 복서의 무기는 다른 격투기 선수들의 다채로운 기술과 달리 주먹밖에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두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타 종목 파이터들은 발차기 무릎차기 등으로 복서를 공격할 수 있지만, 그것이 실패하게 되면 바로 복서의 사정권에 들어가게 돼 치명적인 반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복서가 ‘핵주먹’ 타이슨이라면? 상대 선수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참담한 결과를 맛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복싱 실력이 K-1에서 중대한 승부처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설적으로 복싱만 고집해서는 살아 남기 힘든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복싱 실력이 뛰어난 제롬 르 밴너 같은 선수가 어네스트 호스트(네덜란드)처럼 지능적인 킥의 소유자를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타이슨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그가 펀치력 스피드 지구력 등을 골고루 갖춘 ‘복싱 머신’인 것은 틀림없지만 K-1식의 대결에서는 아무 것도 검증된 바가 없다.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는 하이킥과 로우킥은 충분히 타이슨을 곤경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클린치에 이은 무릎차기 등 후속 공격을 즐겨 하는 K-1 선수들의 스타일도 클린치 상황에 약한 타이슨에게 작지 않은 장애물이다.

하지만 7월31일 열리는 대회까지는 석 달여 준비기간이 남아 있는 데다 그의 천부적인 복싱 실력을 감안하면 ‘초유의 빅매치’를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 강자들의 정글, '산 넘어 산' 될수도

타이슨의 K-1 출전이 결정된 후로 그의 대결 상대로 많은 선수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야수’ 밥 샙(미국)을 필두로 제롬 르 밴너, 어네스트 호스트, 미르코 크로캅(크로아티아) 등 대부분 쟁쟁한 강자들이다.

누가 타이슨의 ‘첫 경험’ 파트너가 될지는 아직 안개 속이지만 이동기 해설위원이 지목한 몇몇 선수는 승패를 떠나 타이슨과 멋진 대결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K-1 월드 그랑프리 4회 우승에 빛나는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호스트. 호스트는 전형적으로 손발을 모두 쓰는 파이터다. 그리 위협적인 신체조건이 아님에도 상대의 장점은 피하고 약점은 집요하게 파고드는 매우 지능적인 전략으로 정평이 난 선수다.

비교적 가는 다리로 끈질기게 시도하는 로우킥은 의외로 상대 선수를 ‘가랑비에 옷 젖게’ 만들어 버리는 위력을 지녔다. 타이슨처럼 저돌적인 인파이터를 다룰 줄 아는 데다 복싱을 주무기로 하는 선수들을 잘 공략하는 것도 강점이다. 타이슨 입장에선 그의 킥을 방어하는 것이 관건이고 여기에 성공하면 오히려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이동기 위원의 분석이다.

무에타이 파이터인 알렉세이 이그나쇼프(벨라루스)도 타이슨이 상대하기에 까다로운 선수로 꼽힌다. 196cm, 107kg의 거구이지만 빠른 스피드에 강한 킥을 자랑한다. 특히 타이슨이 꺼리는 클린치 상황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릎차기 기술이 일품이다. 타이슨이 이 선수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펀치 거리를 유지하면서 로프나 코너로 몰아가 연타를 날리는 것이 적절한 해법으로 지적된다.

이그나쇼프 선수처럼 무릎차기를 장기로 가진 레미 보냐스키(네덜란드)도 타이슨에게도 녹록치 않은 상대다. 먼 거리에서 훌쩍 날아 올라 상대를 가격하는 플라잉 니킥은 정확하면서도 치명적인 그의 필살기다. 상대와 뒤엉키는 난타전을 꺼리지 않는 것도 무서운 대목이다. 펀치를 주고받는 와중에 순간적으로 무릎차기를 적중시키기 때문이다. 타이슨으로서는 최대한 접근전을 펼치며 몸싸움과 펀치에 승부를 걸어야 승산이 있다.

현재 타이슨의 대결 상대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밥 샙은 사실 격투기에서는 완전 ‘초짜’다. 그럼에도 그는 근육질로 똘똘 뭉친 키 2m, 몸무게 170kg의 무시무시한 신체조건에서 터져 나오는 파워와 이에 어울리지 않는 순발력으로 순식간에 K-1 무대의 스타로 떠올랐다. 데뷔 초만 해도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으나 전문 트레이너들의 집중적인 조련으로 최근엔 테크닉까지 서서히 갖춰 가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거듭나고 있는 야수’ 밥 샙도 타이슨 앞에서는 별 힘을 못 쓸 것이라는 예상이다. 체격이나 파워에서는 타 선수들을 압도하는 게 사실이지만 격투 능력이나 전략에서 아직 걸음마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타이슨에게는 20여년 동안 사각의 링을 지배하며 생존해온 경험과 재능이 있다. 밥 샙이 덩치만 믿고 덤비다가는 큰코 다치기 딱 좋은 까닭이다.

사실 이들 네 명 외에도 타이슨이 부담을 느낄 만한 K-1 고수들은 적지 않다. 그들 중에는 은근히 타이슨과의 한판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전 상대를 타이슨이 직접 고르도록 한 계약조건 탓에 승부는 ‘소문난 잔치’로 끝날 공산도 크다. 타이슨이 벅찬 상대를 고를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04-28 16:58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