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기·해결사로 맹활약, "남는 장사네" 흐믓죽 쑤는 일부 선수, "본전 생각 나네" 구단 속앓이

[스포츠] 프로야구 이적 스타 중간점검 "주판알을 튕겨보니…?"
신무기·해결사로 맹활약, "남는 장사네" 흐믓
죽 쑤는 일부 선수, "본전 생각 나네" 구단 속앓이


2004 삼성증권배 프로야구판의 혼전 양상이 ‘계절의 여왕’ 5월에 들어서도 좀처럼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팀당 34경기를 소화한 5월13일 현재, 선두 현대를 제외한 2위부터 8위까지의 승차는 고작 5게임에 불과할 정도로 엎치락 뒤치락 판도가 이어지고 있다. 각 팀 사령탑은 자고 일어나면 출렁이는 순위 변동에 가슴을 쓸어 내리는 형국이다.

감독들의 가슴 한 구석을 짓누르는 화두는 또 있다. 팀의 허점을 메워줄 것으로 기대하며 다른 구단에서 공들여 ‘모셔온’ 새 식구의 활약 여부다. 어떤 선수는 금세 자신의 몫을 발휘해 미소를 자아내고 있지만, 어떤 선수는 벌써부터 허탈한 마음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게 하는 경우도 있어 감독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적군에서 아군으로 돌아선 8개 구단의 ‘신 해결사’들. 그들의 현재 기상도를 살펴본다.

- 송지만·마해영·이상목, 흐린 후 맑음

지난 겨울 전통의 투수 왕국 현대 유니콘스는 수준급 불펜 요원 권준헌을 한화에 내주고 대신 송지만을 데려왔다. 한 해 홈런 20개 이상은 너끈한 장거리포 송지만이 가세하면 심정수, 브룸바, 이숭용 등과 함께 중심타선 화력이 ‘살인 타선’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코칭스태프의 이런 구상은 그러나 정규리그가 시작되면서 곧바로 낭패를 만났다. 한화 시절 ‘황금독수리’라는 애칭에 걸맞게 팀의 중심으로 활약했던 송지만이 완전히 솜방망이로 전락하고 만 것. 홈런포는 고사하고 안타마저도 가뭄에 콩 나듯 해 급기야 4월 말에는 타율이 2할3푼대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러던 송지만이 회복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5월에 접어들면서. 최근 5경기 동안엔 4할에 육박하는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타격 페이스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게다가 박종호(삼성)가 빠져 나간 뒤 고민거리로 대두됐던 2번 타순에서도 만점 활약을 보여 코칭스태프의 선수 기용 폭을 넓혀주고 있다.

기아 타이거즈의 확실한 해결사로 주목 받던 ‘마포’ 마해영의 올 시즌 궤적도 송지만과 매우 닮은 꼴이다. 거포 부재에 시달리던 기아가 거액 몸값을 들여 모셔온 FA 대어 마해영은 시즌 초 도대체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명색이 4번 타자인데 타율은 겨우 2할에 턱걸이하고 찬스에선 번번이 헛방망이질 하기 일쑤니 동료들 볼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김성한 감독의 인내 덕에 꾸준히 출장할 수 있었던 마해영은 최근 어렵사리 부진 탈출 기미를 보이고 있다. 매 경기 안타 행진을 벌이며 타율을 2할7푼대까지 끌어올렸고, 뒤늦게나마 시원한 홈런포도 가동하기 시작한 것. 마해영은 지난해 삼성 시절에도 극심한 장기 슬럼프 뒤에 호쾌한 타격을 되찾은 바 있어, 최근의 호조는 진면목을 발휘하는 신호탄일 가능성이 크다.

만년 꼴찌 롯데 자이언츠가 팀 재건을 위해 제1선발감으로 영입한 FA 투수 이상목도 시즌 초반 3연패의 미끄럼틀을 탔다가 이후 2연승으로 반전의 기틀을 마련한 경우다. 정교한 제구력을 갖춘 데다 국내 최고의 포크볼을 구사하는 이상목의 초반 부진은 다소 의외였다. 3연패를 하는 동안 ‘홈런 공장장’의 불명예에다 6점대 가까운 방어율이라는 치욕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5일 SK전에서 타선의 도움으로 챙긴 첫 승을 기점으로 서서히 에이스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 정수근·박종호·권준헌, 팀의 보배

이상목과 함께 롯데 재건의 쌍두마차로 영입된 ‘날다람쥐’ 정수근은 구도 부산의 야구 열풍을 되살리는 선봉장이다. 국내 최고의 톱타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빠른 발과 높은 출루율로 공격의 첨병 역할을 100% 수행하는 한편, 특유의 익살과 재치로 덕아웃 뿐 아니라 야구장 분위기를 띄우는 가욋일도 여전히 열심이다.

국내 최고 부자구단 삼성 라이온즈가 지난 겨울 마해영을 내주고 정수근을 가로채인 가운데 마지막으로 건져 올린 FA 대어 박종호도 팀의 기대를 충분히 채워주고 있는 경우다. 삼성의 고질적인 취약점이었던 2루수 자리를 훌륭하게 메우는가 하면, 뛰어난 작전 수행 능력으로 공격의 가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 게다가 박종호는 연속경기 안타 아시아 신기록의 사나이로 우뚝 서며 시즌 초 관중몰이에도 한몫 하는 등 삼성의 보배로 완전히 거듭났다.

프랜차이즈 스타인 송지만을 내주는 출혈을 감수하고 마무리 투수로 권준헌을 데려온 한화 이글스도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장사를 했다. 선발에 비해 허약한 뒷문이 늘 걱정거리였던 한화가 올 시즌 상위권을 넘볼 수 있는 데는 권준헌의 존재가 크게 작용한다. 권준헌은 14일 현재 7세이브를 올리며 구원 투수 레이스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 놓고 있는 중이다.

- 진필중·이상훈, 먹구름

특급 마무리 ‘삼손’ 이상훈의 빈 자리를 진필중으로 채운 LG 트윈스의 뒷문은 표면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 진필중은 14일 현재 8세이브를 올리며 구원 경쟁 2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진필중의 투구가 내용적으로 부실하다는 데 LG의 고민이 있다. 구위가 예전처럼 타자를 압도하지 못해 보기에도 위태위태하다. 방어율은 3점대 중반을 훌쩍 넘어서 있을 정도다.

LG는 그래도 이상훈의 공백을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기타 파동’으로 인해 SK 와이번스에 거의 떠넘기다시피 내준 이상훈이 올 시즌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훈은 고작 2세이브를 올리는 동안 무려 세 번이나 패배의 굴레를 썼다. 운이 나빴던 것도 아니다. 구위가 떨어진 공이 타자들에게는 배팅볼처럼 보여서다. 방어율은 무려 6점대에 이르러 코칭스태프로선 이제 마운드에 올리는 것조차 두려울 지경이다.

SK는 당초 잠수함 조웅천과 함께 왼손 이상훈으로 짜여진 최강의 더블 마무리 체제를 구축한다는 복안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공짜’를 밝히다가는 화를 입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곱씹는 중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05-19 21:22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