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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되돌리기]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역사와 삶의 패잔병들



2004년 칸 영화제는 예술 분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켓 시위로 시작해 ‘화씨 911’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마이클 무어가 부시를 향해 신랄한 조롱을 퍼붓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정치적일 수 없는 영화제였다. 이라크전을 반대했던 프랑스가 반미의 마이클 무어를 선택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을까? 이라크사태가 갈수록 혼미해지고 전세계적으로 반미 여론이 들끓자 ‘부시 때리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 배짱 두둑한 감독에게 의미심장한 상을 안겨준 모양이다.

사실 영화제는 어떤 의미에서 언제나 정치적이다. 콜롬바인 총기 사건을 다룬 영화 구스반 산트의 ‘앨리펀트’와 반전영화 ‘지옥의 묵시록’처럼 태생부터 정치적인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나 자국영화를 지나치게 총애한 탓에 독일감독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대신 프랑스 감독 모리스 피알라의 ‘사탄의 태양 아래’에 대상을 수여했을 때도 칸은 줄곧 정치적인 선택을 했다. ‘춘향뎐’이 한국영화 최초로 칸 본선에 진출한 것도 분명 순수한 예술적인 결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구식 오리엔탈리즘과 지역적 안배를 위한 정치적 고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90년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한 러시아 영화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도 예술적 미덕 이전에 정치적인 고려가 먼저 있었던 영화 가운데 하나이다. 비탈리 카네브스키 감독의 생애 첫 장편 영화인 이 영화는 1947년 스탈린 시대에 소련의 쓰촨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탄광촌 마을인 이 곳에 일본인 포로들과 러시아 죄수들이 한데 모여 살고 있다. 역사와 삶에서 모두 패잔병인 이들은 낯설고 차가운 땅에서 따뜻한 고향을 꿈꾸고, 인생의 어두운 터널에 갇혀 그늘진 성장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냉정한 현실 앞에서 일찌감치 꿈과 타협하는 법을 알아간다.

주인공 발레르카와 갈리야는 프랑소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의 사랑받지 못하는 소년 앙투완과 1,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양철북’의 오스카 마쩨라트, 조숙하고 영악했던 ‘중앙역’의 조슈아를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매춘부 어머니를 둔 발레르카는 거리에서 차를 팔며 악착같이 살아가는 갈리야에게 반하고 이 둘은 동병상련하며 회색빛 시베리아 하늘을 견뎌낸다. 하지만 이내 곧 암흑같은 시절은 이들을 질식시키고 만다. 태어나서 한번도 동심의 순수와 희망을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은 처음으로 돈을 모아 썰매를 장만하는 어린이다운 꿈을 꿔보지만 결국 힘들게 마련한 썰매를 도둑맞으면서 자신들의 동심도 영영 삶의 잔인한 농간에 도둑맞고 만다. 열정과 흥분이 순식간에 허탈과 환멸로 변하는 것을 경험한 어린이들이 이 후 잘못 놓여진 철로처럼 위태로운 삶의 노선을 밟아가고 영화는 잔인할 만큼 허무하게 이들의 끝을 따라간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47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시즘이 역사에서 사라진 이때 전승국이 된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의 독재체제가 더욱 강화된다. 그리고 러시아의 스탈린주의가 역사에서 퇴출당하고 마는 1990년. 이 해에 제작된 이 영화는 탄광의 시커먼 탄가루에 얼룩진 사람들의 삶을 통해 스탈린의 정치적 실패를 암시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칸이 러시아의 정치적 실패를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엿볼 수 있는 이 영화를 결코 그냥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이 해의 황금종려상은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광란의 사랑’에 돌아갔다. 드디어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이념의 세기가 가고 의식없는 자본이 지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이 담긴 칸의 선택인 셈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


입력시간 : 2004-06-0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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