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쏜다" 서바이벌 승부수프로데뷔 이후 성공적 변신거듭, 일본무대서 또다른 '진화' 준비

이승엽, 타격폼 바꾸며 와신상담
"다시 쏜다" 서바이벌 승부수
프로데뷔 이후 성공적 변신거듭, 일본무대서 또다른 '진화' 준비


다시 한번 ‘변신 모드’에 들어간 국민타자 이승엽(지바 롯데 마린스)의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일본 프로야구에서 난생 처음 2군에 추락하는 수모를 겪은 이승엽이 와신상담 끝에 새로운 방망이를 곧추세우고 6월 4일 돌아왔다. 눈물 젖은 빵을 씹은 지 24일 만의 컴백이다. 그는 즐겨 쓰던 무거운 방망이 대신 ‘회초리’ 같은 900g 짜리 배트를 신무기로 장착했고, 나아가서는 방망이를 휘두르는 타격 폼까지 확 뜯어고쳐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이승엽은 국내 프로 무대에 데뷔한 지난 95년 시즌부터 지난해까지 크게 두 차례 타격 폼의 수정을 시도한 바 있다. 모두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공격적인 실험들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매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시도하는 변신은 지금까지 쌓아올린 명예를 최소한 ‘수성’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그 결과가 더욱 주목된다.


- 타격자세 바꾸며 성적 업그레이드

지난 9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면서 프로 신고식을 가진 이승엽은 여드름도 가시지 않은 앳된 모습의 고졸 신인답게 ‘얌전하고 참한’ 타격 폼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양 발을 배터스 박스 라인과 거의 평행이 되도록 놓는 이른바 수평 스탠스로 타격에 임했다. 상체를 약간 웅크린 채 투수를 노려보는 모습은 먹이를 노리는 앙증맞은 ‘새끼 사자’를 연상케 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이 무렵의 타격 폼은 양준혁(삼성 라이온즈)이나 마해영(기아 타이거즈) 등의 슬러거들이 취하는 호쾌한 모습과는 달리 아주 평범한 자세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타격 폼으로 한 시즌을 마친 루키 이승엽의 성적은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거의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100안타 이상을 때린 데다, 홈런과 타점은 각각 13개, 73타점을 올리면서 신인답지 않은 과실을 거둔 것. 이승엽은 이듬해에도 2년차 징크스에 빠지지 않고 상승세를 이어 갔다. 타율은 정교한 타자의 잣대라는 3할대에 올라선 데다 타점도 늘려 팀의 중심 타자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데뷔 후 2년 동안 이쯤 되는 성적을 올렸다면 선수 본인도, 코칭 스태프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더구나 애초 투수로 입단한 선수가 부상 탓에 타자로 전업한 후 거둔 성과가 아닌가.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특히 코칭 스태프의 판단은 더욱 그랬다. 정교한 ‘중거리포’로만 썩혀 두기에는 그의 타격 자질이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이승엽의 ‘은사’ 백인천 당시 삼성 감독이 국민타자 탄생의 씨앗을 뿌린 중대한 결단을 내린 게 바로 이 때였다. 이승엽을 ‘장거리포’로 육성하기 위해 그의 타격 폼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문한 것. 테이크백을 하면서부터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가 타격 순간 내딛으며 타구에 최대한의 임팩트를 가하는 ‘외다리 타법’은 이런 계기를 거쳐 이승엽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첫 번째 변신의 효과는 예상 밖으로 빨리 나타났고 또한 엄청났다. 새로운 타격 폼으로 나선 97년 시즌, 이승엽은 전년의 9개보다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32개의 대포를 쏘아올리며 국내 리그서 처음 홈런왕에 올랐다. 타점도 114점이나 쓸어 담았고 타율마저 자신의 역대 최고 기록인 0.329까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몸에 완전히 익은 외다리 타법의 파괴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늘어났다. ‘흑곰’ 타이론 우즈(전 두산 베어스)와 불꽃 경쟁을 벌였던 98년에 38개, 전국을 ‘1차 이승엽 신드롬’으로 몰고 갔던 99년엔 무려 54개의 홈런포가 터져 나왔다.

이처럼 외다리 타법은 국내 최고 슬러거라는 영예를 이승엽의 손에 쥐어줬지만, 그늘도 없지 않았다. 홈런 타자의 불명예스러운 딱지라 할 수 있는 삼진이 갈수록 늘어난 것. 세 번째 홈런왕에 올랐던 2001년에는 무려 130개의 삼진을 당했을 정도다.


- 외다리 타법 버리고 아시아 홈런왕 등극

2002년 시카고 컵스,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의 스프링 캠프에 초청 선수로 뛰며 메이저리그의 꿈을 키우던 이승엽은 마침내 ‘모 아니면 도’ 식의 외다리 타법을 버리기로 작정한다. 물론 한국 투수들보다 월등히 빠르고 묵직한 구질을 가진 빅리그 투수들을 상대하기 위한 사전 준비였다.

야구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홈런 타자 치고는 작은 덩치와 파워를 지닌 이승엽이 외다리 타법을 버리면 타구의 비거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승엽의 결단은 옳았다. 축족인 왼발보다 오른발을 타석 뒤쪽에 두는 의?스탠스에, 배트를 수직으로 한껏 곧추세운 새로운 타격 폼은 2003년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경신이라는 대성공을 가져 왔다. 이뿐 아니라 홈런 타자의 그늘인 삼진도 크게 줄어들어 일석이조의 결과를 얻어낸 셈이 됐다.

아시아 홈런 최고봉에 오르게 한 이승엽의 2003년식 타법. 경지에 오른 고수의 무기인 만큼 더 이상의 손질이 불필요할 듯했던 이 타법도 일본 무대에서는 별 소용이 없었다. 올 시즌 초반 3할 중반의 타율과 초대형 홈런 등으로 거침없이 적응해 나갈 때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일본 투수들의 집요한 몸쪽 공략과 포크볼에 속절없이 당하면서 버림 받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이승엽은 다시 한번 타격 폼 수정이라는 모험에 승부수를 던졌다. 2군에서 새로운 타격 폼을 가다듬고 돌아온 그의 모습은 자못 어색한 느낌이 들 만큼 달라졌다. 양 발을 멀찌감치 떨어뜨린 오픈 스탠스에 상체의 중심도 상당히 아래 쪽으로 내린 자세다. 테이크백 동작도 간결하게 줄였다. 이런 몇 가지 변화는 물론 공 끝의 움직임이 좋은 일본 투수들의 구질에 대해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처방이다.


- 일본서 쓴맛 뒤 다시 폼 수정

6월 5일 현재까지 복귀 후 치른 2경기에서 이승엽은 아직 달라진 타격 폼만큼이나 달라진 방망이 솜씨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타점을 올린 안타가 하나 있기는 했으나 시원한 타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눈여겨볼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타석에서의 안정감이다. 투수들이 던지는 공에 마냥 끌려 다니며 헛방망이질 하기 일쑤였던 2군 강등 직전의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이다. 선구안도 적잖이 회복된 것으로 분석된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나쁜 공에 쉽사리 방망이를 내미는 횟수가 줄어든 게 단적인 증거다. 이제 남은 것은 시즌 초 화끈한 타격을 보여주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프로야구 입문 후 항상 ‘진화’를 화두로 방망이를 휘둘러온 이승엽의 실험은 매번 성공했다. 10년차를 맞은 올해, 그것도 낯선 일본 무대에서 위기 극복 능력이라는 또 다른 진화를 그는 과연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06-08 16:20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