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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되돌리기] 8명의 여인들
8色의 색다른 유혹



요즘 유달리 동양 문화에 심취해있는 듯한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그의 영화 킬빌에서 이소룡에 대한 오마쥬를 표현하기 위해 이소룡의 검은 줄무늬가 그려진 노란색 유니폼을 선택했다.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이 입었던 이 검은 줄무늬의 노란색 유니폼은 단순한 영화의 의상을 뛰어 넘어 배우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된 셈이다. 그런데 이소룡은 왜 하필 노란색과 검은색을 선택한 것일까? 노란색은 보통 시각적으로 최적의 장거리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경고를 알리는 색으로 쓰인다. 특히 노랑 바탕에 검은 글씨는 위험을 알리는 데 적격이다. 아마도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흥분시키는 노란색이 싸움을 걸 때 효과적이었던 모양이다. (노란색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소룡의 액션에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처럼 의상의 색깔에 눈이 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8명의 여인들’에서는 배우들이 입은 의상의 색깔이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적한 대저택에 모인 8명의 여인들. 이들은 모두 각기 자신들만의 비밀을 숨기고 한 집에 모였다. 이들의 비밀들은 8명의 여인들과 관계있는 남자 마르셀이 죽은 시신으로 발견되는 순간부터 하나 둘씩 음흉한 속살을 드러낸다. 마르셀의 부인 개비, 마르셀의 장모 매미, 개비의 동생 오거스틴, 개비의 두 딸 까뜨린느과 스종, 마르셀의 동생 피에레뜨, 하녀인 샤넬과 루이즈. 이 8명의 여인들은 영화 속에서 특정한 색의 옷을 입고 등장해서 각기 다른 8가지의 성격을 드러낸다.

에바 헬러가 쓴 ‘색의 유혹’에서 구분한 색깔론을 대입해서 보면 사랑하지도 않은 남편 마르셀과 결혼한 개비의 색은 그리움의 색인 파랑이다. 영화 속에서 녹색빛이 감도는 파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개비는 그의 옷에서 멜랑꼴리한 블루스 음악의 그리움을 표현한다. 마르셀의 장모는 연보라색을 입고 있다. 바이올렛이라고 불리는 보라는 이탈리아어 비올렌티아, 폭력과 유사해서 흔히 보라색은 폭력과 권력의 색으로도 여겨진다. 마르셀의 장모는 남편을 독살한 전적이 있는 인물. 허영심으로 충만한 그녀에게 보라는 달콤한 죄의 색인 셈이다.

개비의 동생인 오거스틴은 가장 많은 색의 변화를 보이는 인물이다. 검은색 안경을 쓰고 등장하는 그는 수평과 수직이 촘촘히 사각형 틀을 만드는 체크무늬 옷을 통해 갑갑한 이성적 판단의 소유자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곧 체크무늬 외투를 벗고 갈색 드레스를 선보이는데 이때 갈색은 시들어 버린 과거의 색, 유행에 뒤진 색, 광채도 열정도 사라진 색이다. 남자와 이렇다 할 연애도 못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다 보내버린 그녀에게 전혀 에로틱하지 않은 갈색은 감옥과도 같은 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에 그녀는 아름다운 은회색의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다. 차가운 거리감의 은색. 태양의 열정이 식어버린 그가 선택한 차가운 달빛의 색이다.

개비의 두 딸은 분홍색과 연두색의 생명력 강한 색깔의 옷을 입는다. 혼전임신을 한 스종. 누드의 피부빛깔이 뿜어내는 다정한 에로스의 색인 분홍색은 소녀와 여인의 단계에서 성숙해가는 스종의 성적 매력을 드러낸다. 미성숙을 의미하는 녹색은 당연 영화 속 막내 까뜨린느의 몫. 하지만 희망의 봄이 되기도 하는 녹색은 영화 속에서 유일한 아버지의 희망이 되는 까뜨린느의 존재를 의미한다.

8가지 색으로 8명의 인물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영화 ‘8명의 여인들’. 도대체 누가 마르셀을 살해한 것인가라는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과정이 시장통 여인네들의 경박한 수다처럼 시끌벅적하지만 로코코 양식의 우아하면서도 위선적으로 보이는 풍만한 드레스를 입은 그녀들의 이중적인 속내를 들춰보는 재미가 심심치 않을 것이다. 특히 프랑스 최고의 우아미 여배우 까뜨린느 드뇌브가 마룻바닥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이 영화가 아니면 쉽게 만날 수 없는 광경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


입력시간 : 2004-06-0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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