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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기의 골프이야기] 내기골프


법조인들 사이에 한 때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형사사건 중에는 ‘업폭절’이 가장 많다. ‘업’이란 교통사고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폭’이란 야간에 또는 흉기를 들고 싸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를, ‘절’이란 소매치기와 같은 남의 물건을 훔친 절도죄를 줄인 말이다. 그러나 유달리 제주도에 있는 법원이나 검찰청에는 다른 지방과는 달리 업폭절사건 보다도 도박사건이 더 많다.

나는 제주도보다도 더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나를 비롯한 모든 섬사람들은, 겨울이 되거나 바람이 부는 날이면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섬사람들은 도박을 많이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른 지방과는 달리 제주도에는 ‘업폭절’사건보다도 도박사건이 많다는 이야기를 맨 처음 들었을 때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도 초등학생이 되기 이전부터 화투놀이를 하였던 기억이 있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사이에 도금 대신에 성냥개비 따먹기 화투를 쳤다. 화투놀이는 그 당시 내가 살고 있는 섬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유행하고 있던 도박 내지는 내기게임의 하나이었다.

화투놀이를 하다 보면 사람의 좋은 면을 보기보다는 나쁜 점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화투놀이를 하다가 사람들이 서로 싸움질을 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더 이상 화투놀이를 하지 않았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좋은 것만 보고 살려고 해도 나쁜 것을 보게 되는 법인데, 화투놀이를 하면 좋은 것보다는 나쁜 꼴을 더 자주 보게 돼 화투놀이가 싫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기를 하는 게임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참여를 기피하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주변의 고시생들은 고스톱이나 포커를 자주했다. 그런 자리에 끼이지 않았던 까닭도 어려서 겪었던 화투놀이에 대한 나쁜 인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른이 된 후 아주 우연히 재미있는 놀이를 하나 발견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골프였다. 하지만 골프도 ‘내기’와 친한 것이었다. 며칠 전 언론에는 우리나라 골퍼들 네 사람 중 한 명은, “내기를 하지 않으면 골프할 맛이 안 난다”고 답한 기사가 실렸다. ‘내기 골프의 실태’를 보여 주는 설문조사에서 총 응답자 404명 중 ‘내기 없는 골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내기 중독 골퍼’가 25%나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듯 골프라는 운동은, 본질적으로 우연성과 사행성을 내포하고 있어, 골퍼들을 끊임없이 ‘내기 유혹’으로 몰아간다. 물론 ‘내기’를 하는 골퍼들은, 그 까닭이나 목적에 관해 “보다 즐거운 골프를 하기 위해서” 라든가, 또는 “한 타 한 타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라든가 등 그럴싸한 이유를 든다.

하지만 나는 내기골프를 잘 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역시 화투놀이에서 겪었던 ‘내기 게임’에 대한 주관적인 편견 내지는 선입견 때문이다. 또 나에게 맨 처음 골프를 소개했던 골프선생님의 부탁도 한 이유가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평소에도 필드에서 별로 말이 없는 내가 ‘내기 골프’를 할 경우 자신도 모르게 너무 침착해져 주변사람에게 찬바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골프장에서 동반자들이 ‘내기 골프’를 하자고 하면, 그때마다 큰 고민에 빠지곤 한다.

지난 토요일 안양골프장에서 올해 들어 처음으로 ‘내기 골프’를 했다. 두 사람씩 편을 갈라 진 팀이 그 날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의 내기를 하자고 제안해 혼자 빠질 수는 없었다. 핸디캡 9라고 하는 정모 사장과 핸디캡이 6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배모 사장이 한 팀이 되고, 나는 핸디캡 10이라고 신고한 허 사장과 한 조가 돼 블루티에서 티샷을 했다. 동반자들이 모두 80대 중반을 치는 사이에, 나는 그날 74타를 쳤고, 승리를 챙겼다.

그날도 내기에는 이겼지만, 돌아오는 길에 ‘어떻게 하면 내기를 하지 않고도 골프를 즐길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입력시간 : 2004-06-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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