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통합을 꿈꾸는 스페인 여인숙

[영화되돌리기]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유럽통합을 꿈꾸는 스페인 여인숙

유럽연합(EU)이 최근 EU 헌법안을 만장일치로 확정하면서 EU 25개국을 대표하는 유럽 대통령이 선출될 날도 머지않은 듯 보인다. 그렇다면 유럽을 대표할만한 사람은 어떤 성향의 인물이 될까?

어느 한 풍자만화에서는 영국인의 요리솜씨, 프랑스인들의 운전실력, 독일인의 유머, 이탈리아인의 질서의식, 네델란드인의 관대함을 모아서 ‘The Perfect European(완벽한 유럽인)’을 선보인 적이 있다. 음식에도 청교도적 검소함이 베어있어 무척이나 형편없는 요리를 하는 영국인, 핸들 앞에서는 누구나 아나키스트로 돌변하는 프랑스인, 모든 것을 사전에 조직하기 좋아하는 성미 탓에 예정에 없는 농담에는 잘 웃지 않는 독일인, 정말 완벽한 법률을 자랑하지만 결코 법을 잘 지키지는 않는 이탈리아인, Dutch Treat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짠돌이로 통용되는 네델란드인 등 유럽 각국 사람들의 단점들만 모아서 통합유럽인의 우스꽝스러운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심심파적 농담만은 아니다. 개구리 다리를 먹는 프랑스인을 개구리(Frog)라고 비아냥거리는 영국인, ‘인생은 즐기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라는 청교도주의적 윤리를 실천하는 영국인을 답답한 수녀라고 놀려대는 프랑스인, 독일인의 질서정연함에 비교되는 너저분한 이탈리아인이 등장하는 한 편의 유럽영화에서도 문화와 인종차별적인 편견으로 서로 결코 통합되기 어려워 보이는 유럽의 진짜 현실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합작 영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는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다국적 기숙사를 배경으로 7명의 젊은이들이 겪는 성장통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온 자비에. 애인을 파리에 남겨두고 온 자비에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 덴마크, 스페인에서 온 친구들과 한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불확실한 사랑과 불투명한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한다. 성애의 짜릿함과 사람 냄새나는 동료애를 경험하고 결국 제자리를 찾는 자비에. 그는 독립할 나이에도 부모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프랑스식 캥거루 세대, 일명 탕기세대(독립을 기피하는 자녀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프랑스 영화 ‘탕기’의 제목을 따서 만든 신조어)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실업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프랑스에서 에나(국립 행정학교)를 나온 아버지의 기대대로 평범한 공무원이 되고자 한 자비에는 영화 마지막에 미래에 대해 새로운 도박을 감행한다. 그에게 그런 도박을 꿈꿀 수 있게 만든 곳이 바로 스페인 바로셀로나였다.

왜 하필, 스페인의 바로셀로나였을까? 한 마디로 스페인은 하나면서도 여럿이고 여럿이면서도 하나인 복잡하고 다양한 유럽의 또 다른 얼굴이다. 여러 자치주들로 이루어진 스페인은 지역마다 문화적 주체성과 독립성이 강해 전체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무정부주의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 국민들 자신도 모호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스페인이라는 국가보다 자신의 고향에 더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고 한다. 영화의 한 수업장면에서 교환학생이 교수에게 까스띠아어로 수업을 해줄 것을 요구하지만 교수는 무조건 까딸로니아어로 수업해야 한다고 하는 모습이 나온다. 아무리 스페인의 공용어가 까스띠아어라 해도 까딸로니아지역에서 만큼은 자신의 언어, 문화, 역사를 지켜나가겠다는 그들 나름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정체성을 잃지 않는 자치주들 덕분에 풍요로운 문화를 지닌 나라로 인정받는 스페인. 자비에는 분명 이 곳에서 자유로운 개인주의의 향기를 맡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모호한 유럽 통합의 어지러운 모자이크를 맞춰나갔을지도 모른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7-01 15:27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