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덤한, 그래서 너무나 현실적인

[영화되돌리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무덤덤한, 그래서 너무나 현실적인

역사를 보는 두 가지 관점을 무식하고 대담하게, 그리고 영화적으로 나눈다면 하나는 롱샷이고 또 하나는 클로즈업일 것이다. 꽤나 그럴듯하게 말하자면 거시적 역사와 미시적 역사이다. 예를 들어 카를로 진즈부르크의 저서 ‘ 치즈와 구더기’는 미시적 역사의 대표이다. 16세기 이단 재판에 의해 처형된 방앗간 주인의 이야기인 ‘ 치즈와 구더기’는 한 개인의 일상적인 삶을 분석함으로써 당대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관계를 밝혀 내고자 했다. 그저 빈둥빈둥 사는 인간존재의 가장 평균적인 일상 생활이 역사의 유의미한 사건으로 부각되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미시사에서 말하는 이러한 일상성의 승리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의 모진 회오리를 견뎌내는 소시민의 삶을 통해서 생의 진정성을 탐구하는 예술 작품들이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일상의 위대함을 일찍이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즉 무의미한 일상이 유의미한 역사가 되는 일은 소설과 영화에서 흔한 일이란 얘기다. 그런데 요즘에는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고 그 적나라한 모습들을 까발리는 데에만 재미를 두는 이야기꾼들이 많다.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일상을 들춰내는 자가 ‘ 생활의 발견’의 홍상수라면, 지루하리만치 소소한 일상에 집착하는 자가 바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박흥식이다.

‘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주인공들의 일상을 극단적 클로즈업 방식으로 읽어나가는 영화이다. 한마디로 주인공 정원주(전도연)와 김봉주(설경구)를 바라보는 밀착된 카메라가 있어 관객으로 하여금 두 인물의 존재 가능성에 도저히 의문을 제기할 수 없도록 인물들에 신빙성, 개연성, 현실성을 부여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두 인물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 도저히 의심을 해 볼 수가 없다. 은행에 배치된 잡지에서 몰래 공짜 쿠폰을 찢으려는 원주와 비오는 날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뿌옇게 되는 안경 때문에 곤혹스러워 하는 봉주의 모습은 우리의 치졸하면서 민망한 일상의 순간들과 다르지 않다.

집을 나섰다가 문득 놓고 온 물건이 생각나 신발을 신은 채 집 안을 어기적 기어가는 게으른 여자와 일요일 늦은 아침 신김치에 대충 밥을 비벼먹고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기어이 애국가를 듣고야 마는 심심한 남자, 조심스레 그의 신발과 내 신발 크기를 재며 가슴설레이는 그녀, 결혼식 사회를 보다가 신랑 이름대신 저도 모르게 자기 이름을 부르는 엉뚱하고 소심한 그. 이들 남녀는 지금 당장 문을 열고 나가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사랑에 서툴지만 사랑을 원하는 지극히 평균적인 인간.

영화는 보습학원 강사 원주와 은행원 봉주의 심심한 연애담을 극적인 사건없이 담담하게 진행시킨다. 봉주의 옛 애인의 등장과 퇴장, 그리고 원주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한 봉주가 원주에게 맘을 열게 되는 계기가 이 영화의 유일하게 극적인 순간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 별 것 없는’, ‘ 대수롭지 않은’, ‘ 쓸데 없는’ 잡담같은 에피소드의 나열이다. 만일 영화가 일상의 과감한 일탈이라고 여기는 관객이라면 결단코 이 심심한 농담에 동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파편적인 일화들에 의미 없이 매몰돼 버리는 삶의 일상성이란 어느 누군가에게는 거대 담론의 폭력보다 더 잔인한 일이 될 수 있다. 봉주의 왼쪽 보조개를 발견하고 좋아하는 원주처럼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별 볼일 없는 일상의 의미를 감지할 수 있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이 영화의 농담을 즐길 수 있을 지 모른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7-06 16:11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