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학교의 풍경

[영화되돌리기] 마지막 수업
우리가 잃어버린 학교의 풍경

미국은 지금 다큐멘터리 열풍에 싸여 있다. 6월25일 개봉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다큐 영화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는 가운데 개봉을 앞둔, 혹은 이미 개봉한 다큐 영화들이 미국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감독 스스로 한 달 간 하루 세끼를 맥도널드 음식만 먹으며 자신의 체형이 변화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 ‘슈퍼사이즈 미’(Supersize me), 이윤추구만을 목표로 삼는 악덕한 대기업의 윤리성과 사회적 책임감에 의문을 던지는 영화 ‘기업’(The Corporation), 클린턴 전 대통령의 토지개발 의혹을 다룬 영화 ‘대통령 사냥’(The hunting of the president) 등 대개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거나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시사적인 다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고발성 다큐멘터리만이 다큐의 본질은 아니다. 날카롭게 현실을 비판하지 않아도 존재의 의미가 충분한 서정적인 다큐멘터리(자연 다큐멘터리 역시)도 충분히 극적일 수 있다. 2003년 프랑스 극장가에서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던 다큐멘터리 영화 ‘마지막 수업’은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지도 교육계의 현실을 풍자하지도 않는다. 그냥 프랑스 시골의 교실에서 6개월간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카메라의 존재는 결코 순진하지 만은 않다. 35년간 교편에 선 선생님이 4살에서 12살 아이들에게 퇴직을 예고하거나 특수학교에 진학하는 자폐아, 아버지의 병환으로 고민하는 학생을 앞에 두고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는 모습에서 피사체에 다해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는 감독의 의도가 느껴지기도 한다. 장면 사이사이에 잡히는 자연의 풍광, 매서운 눈보라와 강풍의 짓궂은 날씨, 클로즈업 되어 등장하는 거북이 등 의미 없이 들어간 듯한 이 장면들마저도 길고 더디지만 자연의 순환처럼 차근차근 커나갈 아이들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원제인 ‘Etre et Avoir’는 프랑스어로 ‘존재하다’와 ‘소유하다’를 의미하는 be동사와 have 동사이다. 이들 동사들은 동사활용을 배우는 첫 단계에 배우는 단어들로 영화 속에서 배움의 첫 단추를 채운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친구들과 함께 존재하고(Etre) 친구들 사이에서 소유(Avoir)의 방법을 배워나가는 성장의 과정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조그만 교실에서 12명 정도 되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숫자를 배우고 구구단을 외우고 받아쓰기를 한다. 간혹 싸우는 친구들도 있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 혼나는 아이도 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화해시키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 불같이 엄하지도 그렇다고 마냥 상냥하지도 않다. 귀여운 아이들 모습에 쉽사리 웃음을 흘리지도 않고 퇴직을 앞두고 아이들과 마지막 이별을 고할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변하지 않는 모습 그대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우리의 선생님의 자화상이다. ‘토요일마다 항상 너를 기다릴게’ 특수학교에 진학하는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싶거든 언제나 찾아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 그는 우리들이 오랜 시간 떠나온 학교에서 항상 우리를 기다릴 것만 같은 우리네 그리운 선생님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번 떠나버리고 나면 결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공간인 학교. 한번쯤 돌아가고픈 학교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는 이 한편의 프랑스 다큐멘터리 속에는 결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학교들만 넘쳐나는 프랑스 교육의 아픈 현실이 담겨 있다.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매스를 들이대지 않아도 이미 우리의 가슴아픈 현실을 드러내주고 있는 영화 마지막 수업. ‘발견과 폭로의 예술’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정의가 다시 한번 확인되는 순간이다.

정선영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7-14 15:53


정선영 영화평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