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거리 측정도 기량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여행 중에 있다. 모 골프장의 고문변호사 자격으로 연수단에 참가하여 동유럽 3개국을 거쳐 브리티쉬오픈을 참관하기 위한 여행 중이다. 여행 중이던 나의 일행이 첫 번째로 들러 본 골프장은 부다페스트 중심에서 비엔나를 향해 버스로 1시간 남짓 달린 다음 도착한 패노니아(PANNONIA) 골프 클럽이었다.

옥수수들녘에 조성돼 자연친화적인 골프장의 관리상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캐디는 물론 없고, 거리단위와 거리표시 흔적이 얼른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첫 티샷을 하기 전에 스코어 카드의 뒷면에 적혀 있는 로컬 룰에 관한 부분을 열심히 읽었다. 그곳에는 페어웨이 한 중간에 묻혀 있는 붉은색 돌은 50㎙를, 파란색 돌은 100㎙를, 노란색 돌은 150㎙, 그리고 하얀색 돌은 200㎙를 표시하되, 퍼팅그린의 중간이 아닌 퍼팅그린 에지까지의 거리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그로 미루어 보아 이 골프장에서의 거리 단위가 야드가 아닌 미터 단위임을 알아차렸다.

또 이 골프장에는 우리나라 골프장에서는 빠짐없이 있는 야데이지목(木)도 심어 있지 않으리라 추측했었다. 이같은 사실들을 얼른 알아채지 못한 나의 일행들 가운데 일부는 “이런 골프장도 골프장이냐”고 반문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골프장에서의 거리 표시가 야드 단위라고 말하기도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미터단위라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우리 대부분은 골프가 끝나고 나서까지도 자기들의 스코어가 좋지 않은 까닭이 거리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불평했다.

문득 몇 해 전 세인트 앤드 류스에서 내가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휴대한 노트북에 들어 있는 내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01. 9. 23. 07:40 나는 두 사람의 골퍼들과 조인이 되었다.신의 선택을 받은 순간이다. St Andrews에서의 첫 티샷. 몸집이 큰데다 머리털마저 희끗희끗하고 안경까지 써서 틀림없이 Monty처럼 보이는 녀석의 볼은 티핑되었고, 키가 작은 녀석의 볼은 왼쪽 러프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맨 나중에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섰다.

티업을 해놓고 숨을 고르고 있노라니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기는 하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비 때문에 이번 여행을 죽 쑤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바람도 없다. 습기가 많아서인지 아니면 이슬이 내린 탓인지 그린키퍼가 타고 갔음 직한 골프 카트의 바퀴자국이 러프 쪽에 나 있다. 그린키퍼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직업인 것 같다. 다만 부지런한 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곳 링크스 골프장에는 티잉 그라운드에서는 보이지 않는 벙커가 많다고 했는데 티샷한 볼이 벙커에 빠지는 것은 아니겠지…」

세인트앤드류스에서 골프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평소와 달리 나는 티샷을 하기 전에 이런 저런 상념을 잠겼었다.

“ Great! ” 티샷 하자마자 들려오는 소리다.

그런데 세컨샷을 하기 전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야데이지목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스프링쿨러를 뒤져보았으나 야데이지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브리티쉬 오픈을 중계하던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의 기억으로는 페어웨이 중간에 최소한 50단위의 야데이지 표시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나는 야데이지 표시를 찾기 위해 한동안 페어웨이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러자 눈치 빠른 동반자 가운데 한 명이 내 곁으로 와서 친절하게 이곳 골프장에는 야데이지 표시가 없다고 알려 준다. 그러면서 골프장에서의 야데이지 표시는 미국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니 나 자신이 알아서 판단하고 치라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거리측정 능력도 골프의 한 측면이라는 생각을 했다.

입력시간 : 2004-07-2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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