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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되돌리기] 방콕 데인저러스
고독한 킬러들의 사랑과 비애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우리나라를 가르켜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고 일본에서 활동한 미국학자 그리피스는 우리나라를 ‘은자의 나라’라고 칭한 바 있다. 한마디로 서구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속을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나라였다. 서구인들에게 동양은 언제나 오지요, 미지요, 야만의 땅이었으니까. 그런데 간혹 동양인들도 같은 동양을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미소의 나라 태국. 화려한 불교 문화를 자랑하는 이 나라는 첨단을 걷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영화 ‘왕과 나’ 속의 율브린너가 다스렸던 샴왕국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지녔지만 자국민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왕과 순박하고 낙천적인 국민들의 모습은 어딘지 신비롭고 평화로울 것 같은 태국의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태국은 미소의 나라인 동시에 무에타이의 나라이고 국왕의 나라이면서 자유의 나라(타이는 자유라는 뜻)이다. 천년역사를 자랑하며 지상 최강의 무술이라 불리는 무에타이. 이 무술의 진가는 이미 영화 ‘무에타이의 후예 옹박’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은 ‘태국의 재발견’이라 부를 수 있는 사건이었다.

태국영화를 통해본 태국의 재발견은 1999년 니미부트르(영화 잔다라 감독)가 만든 영화 낭낙이 타이타닉을 압도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후 꽤 괜찮은 상업적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면서 국제무대에서도 선보이게 되었고 국제 영화제 수상작들도 생겨 난다. 그 가운데 하나가 토론토 영화제 국제 비평가상을 수상한 방콕 데인저러스. 국내에서도 개봉한 영화 디아이를 통해서 이미 감각적인 영상을 보여준 형제 감독 팡 브라더스는 이 영화를 통해서 방콕의 암울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순박한 미소 아래 감춰진 어두운 울음과 자유를 팔아버린 고독한 킬러들의 비애를 말이다.

영화는 화려한 네온 사인 아래 휘청이고 있는 방콕의 밤거리에서 시작된다. 전문 살인 청부업자인 콩과 조, 그리고 조의 애인 아움. 이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열없이 스크린을 배회한다. 세상에 버림받은 냉혹한 킬러, 누군가의 삶을 제 손으로 지워나가는 데 쾌감도 불쾌감도 없는 냉혈안인 이들은 모두 중경삼림의 임청하처럼 타락천사의 여명처럼 세기말적 인물들이다. 영화 내내 흔들리는 카메라는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점프컷을 반복하며 감각적인 세기말을 연출한다. 이 때문에 네러티브 보다는 비쥬얼을 강조한 왕가위의 아류영화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범작의 수준을 넘지 못해도 태국의 현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누구의 아류라는 평가는 크게 중요치 않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태국의 이미지 가운데 하나. 바로 마약과의 전쟁이다. 영화 속에서도 마피아로 연상되는 무리들이 일본식 술집에서 마약을 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마약과 연계된 마피아들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태국의 실상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실제로 탁신 총리는 지난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약사범 검거에 나섰는데 검거 과정 중 벌어진 총격전에서 무려 1000여명이 사망했을 정도였다.

‘천사의 나라’라는 박제 같은 별칭이 붙은 방콕. 타락천사만이 배회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태국의 그늘을 한번 보는 것은 어떨까? 한 나라의 명암을 다 봐야 진정 그 나라의 살 냄새를 맡아본 셈일 테니.

입력시간 : 2004-08-1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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