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인간의 사랑과 판타지

[영화되돌리기] 울프
늑대인간의 사랑과 판타지

세계 각국의 민담에는 공통적으로 인간이 동물로 변하는 내용이 있다. 대개 죽음이나 영혼을 상징하는 동물(새)로 변신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애니미즘적인 세계관이 담겨있다. 죄에 대한 대가로 악마적인 동물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일종의 저주와도 같다. 하지만 악마적인 동물로의 변신은 인간성의 타락임과 동시에 초자연성의 부활이기도 하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전자에 방점을 두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인간들은 후자에 열광했다.

보통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로 재 탄생되는 이런 변신은 문화마다 독특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 변신 이야기에는 그 문화에서 가장 사나운 맹수로 여겨지는 동물이 선택된다. 유럽과 북부 아시아에서는 늑대나 곰, 아프리카에서는 하이에나나 표범, 중국,한국, 일본 등 기타 아시아 지역에서는 호랑이가 그 대상이다. 이들 동물로의 변신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말하듯 인간 가치의 하락이기보다는 제어할 수 없는 본능과 무의식의 세계의 표출이다.

이 가운데 늑대인간은 그리스 신화에서 원형을 찾는다. 늑대에 시달리던 그리스 고대 지방에서 '늑대 제우스'에 대한 숭배의식이 행해졌는데 이때 인육을 섞은 제물을 먹은 사람은 늑대로 변한다고 믿었다. 중세 시대에는 자신이 늑대라고 믿는 일종의 수화망상(獸化妄想)이 있었는데 이는 야성적 본능에 대한 인간의 동경이 병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제할 수 없는 본능의 매력 때문인지 늑대인간은 뱀파이어와 더불어 문학이나 영화를 통해서 괴기스럽지만 가장 섹시한 등장인물로 등장하곤 한다.

마이크 니콜스의 1994년작 '울프'는 늑대인간을 소재로 하고 있다. 감독 마이크 니콜스는 일찌감치 별다른 특수분장 없이도 늑대와 아주 잘 어울리는 잭 니콜슨에게 점점 늑대로 변해 가는 윌 랜들 역을 맡겼다. 신문사 편집장인 윌은 우연히 늑대와 마주쳐 물리게 된다. 그러나 크게 다치진 않았고 별 이상은 없어 일상의 생활로 돌아간다. 그러던 중 직장에서 윌은 믿었던 부하직원 스튜어트(제임스 스페이더)에게 배신당하고 편집장 자리마저 뺏긴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윌에게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감각이 발달하고, 활력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능력을 지니게 된 윌은 언제 의욕을 상실했었냐는 듯, 다시 자신의 자리를 되찾고, 뛰어난 후각은 부인과 스튜어트의 불륜을 알아내기도 한다. 게다가 사장의 딸인 로라(미셀 파이퍼)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윌은 활기차게 생활하면서도, 점점 기억이 끊어지고 외딴 곳에서 나체로 손에 피범벅을 한 채 있기도 하는 자신이 불안하기만 하다. 그리고, 자신이 조금씩 늑대로 변해가고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

올해 나이 67세인 잭 니콜슨. 최근 개봉한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 능구렁이 바람둥이로 분했던 그는 지금껏 영화 ‘이지 라이더’나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등을 통해 광기와 함께 거친 야성적 매력을 내뿜는 인물을 연기해 왔다. 때로는 귀여운 악마 같고(‘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때로는 고집불통 노친네 같지만(‘어바웃 슈미트’) 결코 변하지 않는 그의 매력은 바로 길들여지지 않는 남성다움이다.

이러한 잭 니콜슨의 동물과도 같은 사랑을 받는 여인 로라는 그와의 잠자리에서 아마도 숨겨진 자신의 본능의 속살이 하나하나 깨어남을 느꼈을 것이다. 늑대의 유혹은 여성들이 꿈꾸는 하나의 판타지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까지 물어야만 했던 잭 니콜슨처럼 늑대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치명적이지 않다면 그건 한낱 싱거운 애완동물에 불과하다. 야성의 본능을 저당잡힌 애완동물에게 남은 건 심심한 순종의 미덕뿐!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8-18 11:24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