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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 여행] 김상국(下)
대중문화를 섭렵한 끼
미워할 수 없는 칠순 악동


지금도 가요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 주제가 ‘ 불나비’(김강섭 곡)는 그의 대표곡. 절절한 톤으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였던 그 곡은 한국 대중 음악사가 남긴 명곡의 대열에 꼽힐 만큼 인상적이었다. 영화 배우로 영역을 넓힌 그는 ‘불량 소녀 장미’를 시작으로 ‘육군 김일병’‘ 벌거숭이’‘8도 장군’ ‘정사’‘불나비’ 등 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했을 만큼 그는 가수로서의 인기를 등에 업은 일회성 연기자가 아닌 타고난 끼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연기력으로 인정을 받았다.

늘 아이디어가 번뜩였던 그는 일본 교포를 위한 공연 때 어떤 상황에서도 새롭게 풀어낼 수 있게 마음대로 개사를 시도 할 수 있는 신민요 ‘ 쾌지나 칭칭나네’를 생각해 냈다. 또 동요 ‘송아지’도 가사에 변화를 주는 새로운 편곡으로 웃음과 함께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도를 넘어설 만큼 짓궂은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골탕 먹이던 그는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행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원로 쇼 무대 사회자들은 “김상국은 무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즐겁게 했던 진정한 엔터테이너”로 기억한다. 실제로 그는 단원들과 어울리다가 신이 나면 자신의 은밀한 신체 부위까지 거침없이 드러낼 정도로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주체할 길 없는 장난끼 탓에 여성단원 숙소에 슬그머니 다가가 방문을 슬쩍 열고 자신의 남성을 불쑥 집어 넣는 일도 서슴지 않아 대경실색한 여성 단원들이 괴성을 내지르게 했던 철없는 만년 개구쟁이였다.

1960년대 말 활동이 왕성한 가수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친목 단체 ‘ 메미회’ 회원이 되었다. 당시 회원은 김상국을 포함 최희준 현미 한명숙 이금희 박재란 포클로버(박형준ㆍ유주용ㆍ위키 리) 김상희 이미자 박상규 조영남 블루벨스의 김천악 장세용 박일호, 이시스터스의 김천숙 김명자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었다. 68년 4월 숙명여대 체육과에서 무용을 전공했던 차정화씨와 결혼했다. 인기의 절정을 이뤘던 70년 초. 자유분방했던 그는 여자 문제로 6개월간 잠적했을 만큼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무너진 이미지와 인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눈물겨운 내조로 그는 재기에 성공했다. 1971년 서울 시민회관 무대에 나타난 김상국. 악동 기질은 여전했다. 멀지 않은 곳에 화장실이 있음에도 그는 늘 무대 뒤에서 실례를 했다. 한번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당시 시민회관 무대감독 배영달씨와 말다툼이 벌어졌다. 하지만 김상국은 “ 시간이 촉박해서 그런다”며 태연하게 응수했다. 결국 김상국의 사과로 말다툼은 끝났지만 계속 무대 뒤에서 소변 보기를 그치지 않았다. 배영달씨도 마침내 포기하고 말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코미디언을 웃기는 가수로 유명했던 그는 구봉서 이기동과 함께 1972년 8월 뮤지컬 극단 예그린의 시민회관 10주년 기념공연 무대에 올랐다.‘살짜기 옵서예’등 예그린의 히트 뮤지컬

모음 형식으로 진행된 무대였다. 또 가수들의 축제인 ‘72 가수의 대향연’ 무대에서도 그의

끼를 당해 낼 가수는 아무도 없었다. 코미디언과 무용수들을 이용하지 않고 코믹 연기에 소질이 있는 김상국을 주축으로 해 서수남 하청일 등 70여명의 가수들이 꾸민 무대였다.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코믹 뮤지컬 ‘요절 춘향전’. 하춘화가 춘향으로, 나훈아가 이도령으로

나왔지만 이날 무대의 진정한 주인공은 방자로 출연한 김상국이었다. 그는 객석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탁월한 코믹 연기를 펼쳐 보였다. 공연의 대성공으로 그는 무대 공연 실황을 모아 ‘김상국 코믹 원맨 쑈-아세아 1973’이라는 음반까지 발표했다. 그를 가수가 아닌 코미디언으로 기억하는 대중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가수들의 화합에 큰 기여를 했던 ‘연예인 체육 클럽’은 그의 아이디어였다. 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연예인 야구단과 축구단 창설의 주역이었던 그는 수익금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사용하는 선행을 펼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인기도 퇴색했다. 하지만 1985년과 1989년 대한항공 창립 20주년과 25주년을 기념해 파리-베를린-런던 등 유럽을 순회하는 두 차례 기념 공연에서 그는 이미자 박상규 주현미 전영록 민해경과 함께 참여해 건재를 과시했다. 1993년에는 상업 민간 방송으로 출범한 SBS TV 코믹드라마 제3극장 ‘아버지와 아들’‘토요일 7시 웃으면 좋아요’ 등에 잇따라 출연했다. 익살과 해학이 뛰어났던 그는 KBS 6시 ‘내 고향 장터’의 리포터로 변신해 녹슬지 않은 끼를 뽐내며 맹활약했다. 99년에는 SBS TV ‘출발 모닝 와이드’ 여름 특집 프로에 리포터로 출연해 고향 부산 기장의 곰장어를 소개했다. 이 때부터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색 짙은 명물 연예인으로 부각된 그는 2000년 3월 소주업체 진로가 내놓은 ‘참이슬’의 부산 모델로도 발탁됐다. 주 모델인 황수정을 제치고 부산지역 신문에 게재돼 마도로스 모자 아래서 환하게 웃는 그의 광고 사진은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변신은 끝이 없었다. 그 해 9월에는 부산일보에서 주관하는 여성 대학에서 ‘김상국과 함께 즐거운 인생을’이라는 문화 강좌를 열었다. 2002년에는 철도청으로부터 월드컵 기간 철도 관련 홍보를 위해 명예 부산역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한국 연예계의 최대 걸물 중 한 명인 김상국은 70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지역의 온갖 축제 무대에 오르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 2004-08-1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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