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선입견


대학생이 돼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일이었다. 우리 과에 여학생이 한 사람 있었다. 그 여학생이 자기 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면서 일요일 명동에 있는 고전화랑이라는 음악다방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그 때 만난 그 학생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얼짱이면서 몸짱이었다. 얼마나 잘 생기고 화사한지…. 그런데 딱 하나 청바지에다 같은 천으로 만든 자켓을 입은 것이 눈에 거슬렸다. 촌놈인 나는 그 당시까지만 하여도 여학생이라면 점잖은 자리서는 치마를 입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야기 끝에 불쑥 그 말을 하였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갔더니 우리 과 여학생이 조용히 나를 불러내어 호통을 쳤다. 그 친구가 그 날 입었던 옷은 미팅을 하기 위해 일부러 새로 지어 입고 나왔던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나는 그 친구로부터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였지만 허사였다.

그런 일이 있는 뒤 나는 장자에서 이런 글을 읽었었다. “사람은 습한 데서 자면 허리병이 생겨 반신불수로 죽지만, 미꾸라지도 그렇던가? 나무 위에 있으면 사람은 떨고 무서워하지만 원숭이도 그렇던가? 이 셋 중에 어느 쪽이 올바른 거처를 알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소, 돼지 따위의 가축을 먹고, 사슴은 풀을 먹으며, 지네는 뱀을 먹기를 좋아하며, 올빼미는 쥐를 먹기를 좋아한다. 이 넷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 맛을 알고 있는가?

암 원숭이는 긴 팔 원숭이가 짝으로 삼고, 순록은 사슴과 교배하며,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논다. 모장이나 여희는 사람마다 미인이라고 하지만, 물고기는 그들을 보면 물속 깊이 숨고, 새는 그들을 보면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순록은 그들을 보면 기운껏 달아난다. 이 넷 중 어느 쪽이 진짜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것일까?”

며칠 전 일본에 다녀오는 길에 겪었던 일이다. 귀국하기 위해 보안수속을 밟고 있는데 내 앞에 서 있던 젊은 여자 둘이서 “감사하무니다.” “저는 미찌꼬이무니다.”라는 식으로 열심히 한국말을 익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감사하무니다”가 아니라 “감사합니다.”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과 몇 마디 더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내가 그들에게 “한국에 가서 무엇을 가장 구경하고 싶으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짤막하게 “욘상”하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의 대답을 더 이상 들어보지도 않은 채 그들이 용산에 있는 이태원에 가서 쇼핑을 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넘겨짚었다. 그래서 내가 “ 아하, 용산! 이태원?” 하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면서 “욘사마, 후유노소나타”라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이 이태원에 가서 쇼핑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연가”의 주연 탤런트인 배용준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류열풍이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의외라는 생각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골프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골프를 알고 난 이후로는 그렇게 좋아하던 산에 가는 일도 아주 뜸해졌다. 여행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늘 골프를 개입시킨다. 심지어 골프와 관련이 없는 업무로 여행을 하더라도 단 하룻밤이라도 묵게 될 경우에는 골프채를 가지고 간다. 아침에 일어나 연습장에 가던지 아니면 방안에서라도 클럽을 잡아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종종 다른 사람에게 취미생활로 골프를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골프가 등산보다 좋다는 식으로, 다른 취미생활에 비하여 골프가 더 좋으니까 골프를 하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내가 골프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골프를 해보지도 않고 골프를 벽안시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내가 바지 입은 여학생을 막연하게 싫다고 하거나 배용준을 보고 싶어 한국에 온다는 일본인 젊은 여성들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선인견에 잡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입력시간 : 2004-08-25 15:0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