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69타의 의미


지난 8월 10일의 일이었다. 법원에 다녀와서 사무실에 앉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다.

“소변호사! 지금 빨리 우리 사이트에 들어가 보세요. 대단한 일이 벌어졌어요. 읽어 보시고 반드시 리플 달아주세요!”예기치 못한 전화에 곧바로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빨간 글씨로 “ 드뎌 69타! ”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라운딩 결과가 요약되어 있었다.

out: 3보기 2버디 37타 0/1/0/1/-1/0/1/-1/0

In : 1더블보기 6버디 32타 -1/2/0/-1/-1/0/-1/-1/-1

아마추어가 기록한 스코어로서는 얼른 믿기 어려운 스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이 벌려진 채 다물어지지 않았다. 축하드리기 위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 와-아!, 와-아!”라는 감탄사만을 연발한 리플을 달아놓았다. 그 분은 아주 오래 전부터 평상시에도 기왕에 골프를 시작했으니 60대 스코어를 기록해 보이겠다며 다짐하듯 말하곤 하였다. 그러더니만 지난 8월 7일에 마침내 그 꿈을 달성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분보다 훨씬 오래 전에 골프를 시작하였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60대 스코어를 기록해야겠다는 뜻을 세워 본 적이 없었다. 홀인원을 하는 것이 우연한 일이듯, 주말골퍼가 언더파를 치는 것도 실력이라고 하기보다는 우연성에 더 좌우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골프를 하는 동안 언더파를 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내 의지대로 골프를 그만 둘 때까지는, 지금처럼 변함없이 골프를 즐길 수 있기 만을 기도하여 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8월 29일 라운딩을 할 때 나에게도 깜짝 놀랄만한 일이 생겼다.

out: 2보기 1버디 37타 0/0/-1/0/1/1/0/0/0

in : 1보기 5버디 32타 1/0/0/-1/0/-1/-1/-1/-1

동반자들은 그날 나더러 골프를 잘 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함께 라운딩을 하였던 경기보조원조차도, 난생 처음 60대 스코어를 보았다고 말하면서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양, 감격해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어쩐지 오르지 말아야 할 곳을 올라버린 듯 얼떨떨하였다. 그 날의 스코어는 나의 실력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우연성이 너무 많이 개입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17번 홀에서의 버디퍼트는, 거리도 10여 미터나 떨어져 있었고, 평상시라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어려운 라이었는데, 참으로 운이 좋게 들어갔었다.

이런 와중에서 제28회 아테네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이번 올림픽 기간동안 내가 목격하였던 몇 차례의 인상적인 순간 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역시 마라톤경기에서 선두로 달리고 있던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데 리마라는 선수가 갑자기 주로에 난입한 사람에 의해 떠밀리는 순간이었다. 물론 우승을 차지한 스테파노 발디니의 말처럼, 리마 선수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발디니가 우승하였을지도 모를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리마가 우승하였을 것이라는 미련이, 며칠이 지난 지금도 나의 머리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 때문에 나는 경기에서의 우승이란 반드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참으로 우연성이 개입될 여지가 많아 아이러니컬한 것임에 틀림없고, 그것은 골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마도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골프가 인생과 비슷하다고 말하는가 보다.

입력시간 : 2004-09-0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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