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미스터 닉의 은행 파산기

[영화되돌리기] 겜블
파란만장 미스터 닉의 은행 파산기

힐러리 클린턴, 빌 클린턴, 모니카 르윈스키, 베컴, 오웬, 패리스 힐튼. 이들은 모두 최근에 자서전을 쓴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스타 시스템 아래서는 명성을 떨쳤던 악명을 떨쳤든 간에 무명만 아니면 어느 정도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개 유명인은 자서전을 출간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O.J 심슨은 이후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 자서전으로 1백만 달러의 선수금을 챙기기도 했다.

영국의 한 퀴즈 쇼에서 사기혐의를 받은 찰스 잉그램도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어 돈방석에 오르기도 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건지, 어쨌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유명하면 장땡이다.

230년이 넘는 전통의 은행 베어링스를 파산시킨 닉 리슨이란 자도 한 때 범죄자로 전락했지만 자서전 출간과 영화 제작으로 가까스로 재기에 성공한 경우이다. 그가 쓴 책 제목이자 영화 제목은 바로 ‘Rogue Trader(악덕 거래인)'. (우리나라에서는 ‘갬블’이란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됐다.)

20세기 초 영국 왕실의 예금을 관리했을 정도로 성공한 은행이었던 베어링스 은행은 1995년 싱가폴 지사에 근무하던 20대의 트레이더 닉 리슨에 의해 갑작스레 파산을 하고 만다. 이 후 리슨은 불공정 거래와 서류은폐로 고발되고 결국 6년 6개월이라는 형을 선고받는다. 영화는 닉 리슨이라는 한 개인이 1992년 3월 베어링스 싱가폴 지사로 발령받아 3년 만에 세계적인 베어링스 은행의 현금 보유고를 바닥내고 파산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닉 리슨은 인도네시아에서의 성공적인 업무수행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싱가폴 지사에서 선물과 옵션의 차익거래를 담당하게 된다. 그러던 중 팀원의 실수로 생겨난 손실을 숨기고 만회하기 위해 독자적인 유령계좌를 활용한다. 결제업무 등을 담당하는 백 오피스와 거래를 맡고 있는 프론트 오피스 모두를 장악하고 있던 닉 리슨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거래 내용을 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손실은 만회되지 않고 불어나기만 했지만 발생된 손실을 유령계정에 숨김으로서 그는 베어링스 내에서는 높은 이익을 내는 직원으로 알려진다. 심지어 파산하기 전해인 1994년에는 그가 2천 8백만 파운드의 이익을 올린 것으로 되어있어 상당량의 보너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발생한 고베 지진으로 인해 일본주가지수가 폭락하자 일본주가지수에 배팅한 리슨은 결국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되고 베어링스사는 겁 없이 달려든 이 무모한 청년에 의해 부도를 맞고 만다.

영화로 제작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끝나는 그 순간부터 영화 밖에서는 파란만장한 리슨의 또 다른 인생이 펼쳐진다. 리슨은 복역 중에 결장암을 선고받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랑하는 아내조차 떠나고 그는 정신치료까지 받는다. 도저히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재기하기 어려웠던 리슨. 하지만 이런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한 강연이었다. 강연 주제는 다름아닌 ‘어떻게 세계적인 거대한 은행을 파산시킬 수 있었는가!’ 자본주의의 상술이 때론 반면교사의 미덕을 발휘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싱가폴에 리슨이 자주 다니던 바에는 ‘Bank Breaker(은행 파산자)’란 칵테일도 있다고 하니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악명이 무명보다 낫긴 나은 모양이다.

정선영


입력시간 : 2004-09-14 17:44


정선영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