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슬럼프


몇 주 전부터 왠지 볼이 겨냥한 곳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벗어나는 폭이 넓어지고 그 빈도도 높아졌다. 숏 아이언의 경우에는 비거리가 평소보다 조금씩 짧아지고, 롱 아이언의 경우 뒤 땅 치는 횟수가 많았다. 드라이버의 경우 런이 짧아졌다. 심한 경우에는 백스핀조차 걸렸다.

평소에는 어드레스를 하기 전에 그립을 하면, 클럽과 왼팔이 일체감이 느껴졌었는데 클럽과 팔이 따로 따로인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도 왼손바닥과 클럽의 그립사이에 공간이 있는 듯 느껴지는 것이다. 그 때문에 피니쉬 동작에서 그립상태를 점검해 보면 클럽이 손바닥 안에서 한번 뒤틀린 상태인 것을 보게 된다. 어드레스를 하고 나서 테이크백을 하기 전에 그립상태가 탄탄함을 느끼고자 하여도 감이 오질 않는다. 요약하여 말하자면 도대체 클럽을 잡은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어드레스를 할 때는 발바닥이 지면에 착 달라붙는다는 예전의 느낌이 전혀 없다. 오히려 몸이 늘 허공에 떠 있는 듯했다. 이 때문에 백 스윙을 할 때에는 상체가 꼬여지는 것이 아니라 밀리는 감이 든다. 백 스윙 할 때 평상시에는 왼쪽어깨가 턱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으로 왼쪽 턱에 닿을 때까지 돌아갔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겠다는 의식만 있을 뿐 실제로는 반쯤 가다가 만다. 그러다 보니 다운스윙이 빠를 수밖에! 물론 다운스윙이 빠른 원인은 왼쪽 어깨가 충분히 돌아가지 않아 백 스윙의 탑에서 순간 멈춤의 여유를 가질 수 없는 데에 있다. 다운스윙이 빨라지니 임팩트 순간에 볼이 클럽페이스의 어느 부분에 맞는지를 보는 것은 고사하고, 도무지 클럽이 볼을 때리는 것을 볼 수가 없다. 바꾸어 말하자면 임팩트 순간에 내 머리는 언제나 볼 뒤쪽에 남아 임팩트 후 볼이 날아가는 모습을 뒤편에서 지켜 볼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임팩트 이전에 머리가 비구선 방향으로 볼의 위치보다 더 앞으로 나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힘을 주어 볼을 때리려 애 써본들 의도한 효과를 거둘 수 없는 것이다. 그 결과 클럽마다 평상시의 비거리보다 훨씬 볼이 덜 가게 된다. 이러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표지점을 남겨 두고 어느 클럽을 잡을 것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목표지점에 못 미치거나 어쩌다 옛날 스윙이 나오게 되는 경우에는 그만 볼이 목표지점을 훨씬 지나가 버린다.

요즘 골프를 하면서 느끼는 고민이다. 슬럼프가 온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골프를 하면서 서너 달에 한 번 꼴로 이런 경험을 하였었다. 사람들은 내가 슬럼프에 빠졌다고 이야기를 하면 매일 아침 연습장에 다니는 사람에게 도대체 무슨 슬럼프가 있느냐며 의아해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골프에 재능이 없기 때문이라고 얼버무린다. 하지만 나는 슬럼프가 비단 골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슬럼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또한 이렇게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 속이 훤히 드려다 보이는 일이기는 하지만 성경책에 적혀 있던 다음과 같은 글귀를 더 자주 암송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언제쯤 이 수렁에서 벗어나올 수 있으려나 조바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슬럼프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슬럼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나는 골프에 대하여 더 겸손해지고 자숙하게 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래도 천만 다행인 것은 지금의 슬럼프가 금년 들어서서 처음 겪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입력시간 : 2004-09-2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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