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팔자 스윙


추석연휴 마지막 날에 있었던 일이다. 고향에 다녀오느라 오랫동안 자동차운전을 했던 탓이었을까? 왠지 몸이 가볍지 않아 아침에 일어나서 골프연습장에 가는 대신에 목욕탕에 가서 뛰었다. 지난 3월에 뛰고 나서 처음이었다. 그래도 그 무렵에는 시속 14킬로미터를 놓고 뛰었었는데, 12킬로미터를 놓고 뛰는데도 숨이 헐떡거렸다.

나이를 먹은 탓일까? 문득, ‘배우는 일이란 흘러가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나아가지 않으면 곧 뒷걸음치게 된다(學問如逆水行舟不進卽退)’고 하던 맹자의 말이 떠올랐다. 체력 단력도 꾸준히 하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쌓아두었던 것마저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오전 내내 뒤척이고 있다가 오후가 되어서 골프연습장에 갔다.

골프연습장에는 내장객들로 꽉 차 있었다. 프론트의 아가씨가 나를 보더니 2층 3번 타석은 이미 다른 손님이 사용하고 있으니 3층 1번 타석을 드리겠다며 반갑게 인사했다. 2층 3번 타석은 매일 아침 내가 연습하던 타석이었다. 그곳은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는 타석이기는 하지만 두 타석 너머에 있는 벽에는 커다란 거울이 붙여져 있어 연습하는 동안 나의 전신을 비추어 볼 수 있기 때문에, 레슨을 받지 않는 나로서는, 거의 언제나 그 타석을 이용해왔다.

그런데, 3층 1번 타석은 2층 3번 타석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바로 앞에 벽거울이 붙어 있어,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너무 가까이서 보이기 때문에 조금 더 불편하게 여기고 있던 타석이다. 그런데다가 3층에서의 연습은 어프로치연습을 할 때 정확성을 가늠하는데 불편하기 때문에 2층에서의 연습을 더 선호하였었다.

한 동안 연습을 하고 있는데, 뒤 타석에서 연습하던 분이 말을 걸어왔다.

“ 골프하신지 오래 되셨어요?”

“ 올해로 만 20년째 되었지요.”

“ 그러세요? 그런데 백스윙의 톱에 이르러서 클럽이 비구선과 평행을 이루지 않고 있는 것이 저와 똑같네요. 저는 골프를 시작한지 비록 3년 밖에 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심지어는 저의 손이 기형이 아닌가 하고 의심이 되어 팔목을 고정시키는 특수장갑도 사용해 본 적이 있었지요. 그렇지만 연습스윙을 할 때에는 그렇지 않은데, 볼만 보면 그만 클럽이 휘청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볼을 잘 친다는 소리도 듣긴하지만, 저의 이런 모습을 지적하는 취지의 한 마디만 듣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저의 스윙에 신경이 쓰이는 바람에 무너져 버리곤 하는 경향이 있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스윙을 보고 있자하니 어쩌면 저와 그렇게도 많이 닮았는지요. 그럼에도 선생님께서는 기막히게 볼을 잘 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세요?”

“ 글쎄 말입니다. 저도 늘 다른 사람들로부터 짐 퓨릭처럼 팔자 스윙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점이 저의 골프스윙에 있어서 커다란 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래서, 저도 선생님처럼 보다 정통적인 스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지요. 하지만 쉽게 익혀지지 않더라고요. 한편 저와 골프를 해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저더러 스윙의 템포와 리듬이 아주 좋다고 칭찬들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들을 좋게 만들려고 노력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오랫동안 골프를 해 오는 동안 그냥 그렇게 길들여져 있을 뿐이지요. 결국 저는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저의 팔자스윙에 대하여 그냥 받아드리고 있지요. 말하자면 선생님과 달리 저는 다른 사람이 무어라고 말하여도 팔자스윙은 저의 숙명이려니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팔자스윙을 하지는 않지만, 템포와 리듬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저를 보며 부러워하는 좋은 점이 제게 있음을 염두에 두고 말입니다.

보아하니, 선생님의 흔들림의 정도는 저와 비교한다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을 만큼 미세하게 느껴지는데,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세요. 골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아야 하는 징표라는 정도로만 의식하면 되지 않겠어요?”

입력시간 : 2004-10-0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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