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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 여행] 쟈니리(下)
구전가요 <사노라면>의 가수
<뜨거운 안녕> 만큼 뜨겁던 인생


연이은 히트 행진에 고무된 신세기레코드는 이례적으로 쟈니리의 독집 음반 제작을 기획했다. 그래서 이봉조에게서는 영화 주제가인 ‘통금5분전’을, 서영은으로부터는 ‘뜨거운 안녕’을, 길옥윤한테서는 ‘내일은 내가 뜬다’와 ‘ 예예예’를 받았다.

‘예예예’는 후에 패티김이 불러 히트를 했던 노래. 이때 녹음한 ‘내일은 해가 뜬다’등 2곡은 독집 발매에 앞서 길옥윤 작품집인 ‘빛과 그림자’음반에 먼저 수록되었다. 1966년 발표된 쟈니리의 첫 독집 음반 ‘쟈니리 가요 앨범’. 국민 가요급인 대표곡 ‘뜨거운 안녕’이 처음 발표된 음반이다. 음반은 나오자마자 품절 사태를 빚으며 35만장이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때의 에피소드. 인천에서 한 연인의 자살 사건이 터졌다. 이들은 ‘뜨거운 안녕의’ 가사를 적어 놓고 동반 자살을 해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또 하나. 차중락의 대표곡으로 유명한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에 얽힌 일화도 있다. 앨비스의 곡을 번안한 신세기레코드 사장의 아들 강찬호는 처음엔 독집을 준비하는 쟈니리에게 이 곡을 주려했었다.

하지만 실연을 당한 자신처럼 차중락도 사귀던 여대생의 집에서 결혼을 반대해 상처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동병상련을 느껴 그에게 곡을 주었다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뜨거운 안녕’의 공전의 히트로 아리랑잡지 독수리상, 동아방송, 각종 주간지의 가요상을 수상한 그는 정상의 가수로 떠올랐다. 이후 세시봉과 뒤세네에서 열렸던 이종환의 ‘한밤의 음악편지’ 공개 방송에 단골 출연을 했다. ‘센티멘탈 리’로 불릴만큼 고독한 성격의 그는 지금도 출세곡 ‘뜨거운 안녕’을 부를때 마다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문제의 곡은 당시 일본에서 막 귀국한 길옥윤의 곡 ‘내일은 해가 뜬다’. 이곡은 ’뜨거운 안녕‘의 인기에 눌려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동아방송 라디오등에서 많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1년후인 1967년.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올테지”라는 현실 부정적 가사 내용이 문제가 되어 금지의 족쇄를 찼다. “그럼 지금은 나쁜 시절이란 말이냐?”는 황당한 금지 사유였다. 1966년 말, 신필름 기획의 음악 영화 ‘청춘대학’에 출연을 했다. 처음 영화 제목은 ‘비틀즈 한국에 오다’였다.

트위스트김의 무대를 보러 극장에 온 영화사 스탭들은 쟈니리의 무대를 보고 반해 주연 배우로 발탁했다. 쟈니리는 남석훈, 유주용, 트위스트 김과 비틀즈팀을 결성해 열연을 했다. 1967년에 개봉된 영화는 빅 히트를 기록하며 쟈니리를 청춘 스타로 급부상시켰다. 톱히트레코드 윤상호사장이 ‘청춘대학’의 사운드 트랙 음반을 발표하면서 홍신윤의 곡 ‘울고 싶은 마음’도 히트 넘버가 되었다. 이후 독집 5장을 발표하며 정상의 가수로 군림했다.

67년 가정을 꾸린 그는 70년대초에 지구레코드를 통해 작곡가 김영광과 3장의 독집을 발표했다. 이 무렵 ‘쇼쇼쇼’의 PD 황정태가 방송 전속 가수 계약을 제의했지만 매니저와의 갈등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 때부터 연예계에 환멸을 느낀 그는 1974년에 미국 LA로 건너 갔다.

이후 뉴욕, 시카고 등지에 살았다. 76년 잠시 귀국해 작곡가 박춘석의 권유로 신보‘어느 날’을 발표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78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재즈 음반을 한 장 더 발표했다. 이 때는 예명으로 이훈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미 연예 활동에 뜻이 없었던 그는 1980년대 초 하와이로 건너가 라이브 바 ‘레드박스’를 운영하며 20년간 살았다.

80년대 초 금지곡 ‘내일은 해가 뜬다’가 구전가요 ‘사노라면’으로 둔갑해 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널리 불리워졌다. 이 노래를 87년 들국화의 전인권과 허성욱이 뛰어난 편곡과 가창력으로 연극 ‘칠수와 만수’의 삽입곡으로 리메이크해 음반을 발표, 빅히트가 되었다. 이후 장필순, 김장훈, 크라잉넛, 신화, 레이지본, 체리필터등 많은 후배 가수들에 의해 불리어졌다.

88년에 잠시 귀국한 쟈니리는 KBS의 추진으로 신중현과 함께 꾸미는 토크쇼를 준비했다. 하지만 담당 PD가 두 사람의 얼굴을 몰라 무산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이 때 TV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전인권을 처음 보았다. 이후 92년, 김준의 도움으로 재즈 음반을 발표하며 SBS TV 임성훈의 ’밤으로가는 쇼‘에 출연해 자신이 ‘사노라면’의 원래 가수임을 넌지시 말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분위기였다. 95년 9월 KBS 빅쇼에서 정원과 ‘우정의 라이벌무대’ 특집 방송을 꾸몄다. 또한 SBS의 드라마 ‘모래시계’의 배경 음악으로 유명한 ‘백학’의 소련 가수 이오시프 꼬브존과 한 무대에 서서 SBS 스튜디오에서 ‘뜨거운 안녕’을 서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서울에 정착한 그는 98년 4번째 결혼을 했지만 2002년 식도암수술을 하며 또 한번의 사지를 건넜다. 이후 서울 청진동 한 카페에서 노래를 부를 때 전인권을 만났다. 자신이 ‘사노라면’을 처음 부른 가수임을 이야기하자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내 노래가 저작권 협회나 노래방에 계속 작자 미상으로 나와 속상해도 확인해 줄 음반도 없고 절차가 복잡해 포기했었다. 이제 ‘사노라면’의 진실이 밝혀져 기쁘다. 또 죽었던 노래를 널리 알려준 후배 전인권이 진심으로 고맙다.”

현재 청담동에서 라이브카페 ‘휘가로’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금년 겨울엔 퓨전 재즈로 신보를 낼 계획을 꿈꾸고 있다. 20여장의 음반을 발표했던 그는 “항상 대중의 취향을 의식해 창법까지 바꿔 노래했다. 후회스럽다. 앞으로는 내가 원하는 강한 터치의 퓨전 재즈앨범을 한 장 내고 싶다”고 힘주어 말한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 2004-10-0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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