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빚어낸 소박한 기적

[영화되돌리기] 브루스 올 마이티
일상에서 빚어낸 소박한 기적

최근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인간적 면모를 다룬 영화 ‘몰락’이 개봉돼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 동안 히틀러를 다룬 영화가 대부분 그를 무자비한 독재자로 묘사한 데 반해서 히틀러를 동물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인물로 그려낸 영화다. 이 때문에 개봉 이후 상반된 평가와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인 이유로 개봉 후 논란이 되었던 영화들은 이 외에도 많다. 2000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영화 ‘귀신이 온다’는 중국 내 상영이 금지됐다. 영화 속에서 일본군이 인간적으로 묘사되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일본군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제 삼으며 영화를 제작한 감독에게 2년 동안 중국 내 영화 관련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제재 조치를 내리기까지 했다.

종교성이 강한 나라는 종교와 관련한 영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이집트이다. 이집트는 최근 유대교 신비주의(캅발라) 단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있는 마돈나에 대해 입국 금지를 추진하고 있을 정도로 반유대주의의 나라다.

이 때문에 영화 ‘매트릭스’는 유대인의 민족주의 시오니즘을 찬양한다는 이유로 상영 불가 결정이 내려졌다(지하세계 ‘시온’의 등장과 영화속에 등장하는 기독교의 상징 개념들로부터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창조주와 창조의 기원에 대한 물음이 담긴 이 영화가 지나치게 종교적이라는 것도 상영금지의 이유였다.

이집트에서 상영이 금지된 또 다른 영화 ‘브루스 올 마이티’. 이 영화는 왜 상영이 금지되었던 것일까? ‘브루스 올 마이티’는 주인공 짐 캐리가 전지전능한 신이 되서 하고 싶은 대로 세상을 움직인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집트의 예술 검열 당국은 “감히 배우가 신의 역할을 맡아 신을 모독했다”며 상영 금지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 영화가 신을 모독했을 리는 만무하다. 이 영화가 모독하고자 한 것은 오직 하나, 노력하지 않고 기적을 바라는 게으른 신앙심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브루스는 버팔로 지역 방송국에서 별 볼일 없는 소식만 골라 전하는 리포터이다. 앵커가 되길 간절히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그를 둘러 싼 주변의 일마저 하나같이 엉망이다. 결국 자신의 바람을 하나도 이뤄주지 않는 신을 원망하는 브루스. 그런 그 앞에 뜻하지 않게 신이 등장한다.

그리고 전지전능하고 무소불위한 신의 힘을 양도한다. 세상을 맘껏 조종할 수 있게 된 브루스는 마냥 신이 나지만 세상은 맘처럼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만능의 힘을 발휘하는 신보다 더 위대한 기적을 만드는 존재가 있음을 깨닫는다. 바로 소중한 일상의 시간을 성실하게 가꿔나가는 평범한 우리네 이웃들이다.

“기적이란 가난한 어머니가 아이들을 축구 교실에 보내기 위해 시간을 쪼개서 일하는 것이고, 10대 청소년이 마약대신 공부에 열중하는 것이야.” 영화는 스스로 기적의 능력을 갖고 있는 인간 개개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전지전능한 신이 만들어내는 기적보다 더욱 위대한 것은 인간들 스스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들어내는 기적이란 얘기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신을 모독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신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가족과 이웃, 그리고 소중한 연인에게서 소박한 삶의 행복을 찾는 것이 신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짐 케리의 과장된 연기와 뻔한 결말이 거슬릴 수도 있다. 그렇고 그런 교훈에다 헐리웃 특유의 건전한 해피 엔딩이지만, 신이 흑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과 만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각 효과 등의 덕택에 그 같은 단점은 참아줄 만 하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10-14 10:56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