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형 남자와 연애하기

[영화되돌리기] 폴리와 함께
A형 남자와 연애하기

‘CEO에 가장 어울리는 혈액형은?’ ‘대통령직에 가장 어울리는 혈액형은?’ 최근 인터넷을 하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질문들이다. 이른바 ‘혈액형 인간학’이라 불리는 것인데 과학적 근거는 희박하나 경험적 어림잡음과 흥미본위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성격연구 방법이다.

이런 ‘혈액형 인간학’은 일본 저널리스트 노미 마사히코가 동명의 책을 저술한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에서 보면 A형은 성실하고 B형은 개성이 강하고 O형은 적극적이고 AB형은 공상적이다.

최근 마사히토의 아들인 도시타카가 쓴 ‘혈액형 비즈니스 파워’에서는 혈액형 별 인재 활용법을 말하기도 하는데 간단히 말해 사고방식이 유연한 B형이 기획하고, 강력한 행동력을 지닌 O형이 판매전략을 짜고, 꼼꼼하고 치밀한 A형이 상품화를 맡고, 이성적 판단능력이 뛰어난 AB형이 분석과 팀간 파이프 업무를 맡는다는 식이다.

이런 ‘혈액형 인간학’의 유행은 영화 쪽으로도 번지고 있다. 최근 제작 중에 있는 우리나라 영화 ‘B형 남자친구’. 이 영화에는 싫증을 자주 느끼고 구속 받는 것을 싫어해 연애상대자로는 영 형편없는 B형 남자의 연애담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A형, O형, AB형과 연애하기는 어떨까?

조금은 도식적이기도 하겠지만 소심한 A형 남자의 좌충우돌 연애담을 그린 영화는 이미 미국에서 개봉해 인기를 끈 바 있다. 바로 밴 스틸러 주연의 영화 ‘폴리와 함께’이다. (주인공 루벤(밴 스틸러)이 실제로 A형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의 행태를 분석해 보건데 흔히 A형이 보이는 전형적 성격유형을 보이고 있기에 대략 A형이라고 추측해본다.)

A형은 보통 소심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중국어로 소심(小心)이라고 하면 우리와 달리 ‘조심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인지 A형은 유달리 조심성이 강한데 ‘폴리와 함께’의 주인공 루벤 역시 조심성이 많은 남자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직업도 고객의 위험도를 낮추면 낮출수록 좋은 보험사의 손해사정 전문가이다.

예민하기는 또 어떤가? 매사에 정서적 긴장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호소하기까지 하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전화 한 통 걸기 어려워 안절부절 못하는 수줍은 총각이다. 별명은 일찍이 조숙해버린 애늙은이요 병적으로 정리정돈에 집착하는 습관에 치밀하게 계산적인 성격까지 어느 하나 여자를 편하게 해주는 면이 없다. 그런데 그런 그가 사랑에 빠졌다. 신혼여행지에서 부인이 바람난 후 낙심해 있던 루벤에게 어디에도 거리낄 게 없이 자유분방한 여자 폴리가 나타났다.

때로는 지저분하고 때로는 대책없이 잘 놀고 취향은 아무나 소화하기 어려운 동남아 스타일이고 정리정돈 등에 구속 받기 싫어하는 성격까지. 그야말로 루벤에게 있어서 폴리는 폭탄과도 같은 여자다. 그의 질서정연한 모든 일상을 흐뜨려 놓는. 하지만 정돈되지 않은 그녀에게서 루벤은 빡빡한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삶의 여백 2%를 감지하고 그 좁은 틈 사이로 서서히 빠져들고 만다. 여자를 위해 더티한 살사 댄스까지 출 만큼 용기백배하진 남자, 그를 변화시킨 힘은 바로 갑남을녀 모두의 바람, 사랑이었다.

소심한 남자가 대범한 여자를 만나 가랑이 찢어지는 영화 ‘폴리와 함께.’ 하지만 원래 전 우주의 대척점에 서있는 남자와 여자라는 불가분의 세계가 융합하기 위해서는 가랑이쯤은 수 천번 찢어져도 된다. 어느 순간 통증이 사라질 만큼 유연해져 있을 테니 말이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달콤한 윤활유가 뿌려졌기 때문이 아닐까?

사족 하나! 폴리가 루벤에게 불고기를 건네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왜 루벤은 불고기를 역겨워 했을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10-19 17:22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