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카사노바의 어리석음


필자에게는 스스로 개선되기를 소망하는 여러 가지의 좋지 못한 버릇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라도 쓰다가 사용하지 않고 있는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버릇이다. 그래서 현재도 여러 개의 드라이버를 가지고 있다. 브리지스톤의 PRO230드라이버, 로열컬렉션드라이버, ASX드라이버, 캘러웨이퓨전드라이버, 타이틀리스트983K드라이버, PRGR DUO드라이버, 미사일드라이버 등이다. 직접 돈을 주고 산 것도 있으나 대부분 모니터링을 조건으로 무료사용을 허락받은 것들이다.

그런데 슬럼프에 빠졌던 지난 가을 이후 평소보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많이 줄었다는 느낌이 들면서 라운딩 갈 때마다 드라이버를 바꾸어 가지고 나갔다. 어느 날, 올 한 해 동안 가장 자주 사용하였던 미사일드라이버를 가지고 갔다가 드라이버 샷이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 그 다음에는 PRGR드라이버를 가지고 갔다. 타구감은 좋으나 미사일드라이버보다 비거리가 짧은 것 같아 그 다음에는 다시 미사일드라이버를 가지고 나갔다.

그러나 역시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그 다음 번에는 타이틀리스트드라이버를 가지고 나갔다. 필자의 타이틀리스트드라이버는 피팅센터에 가서 본래 있던 샤프트를 빼내고, 일본 골프다이제스트 잡지를 통해 알게 된 후지꾸라샤프트로 바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틀리스트드라이버를 가지고 간 날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 골프연습장에 가기 전에 그 동안 깊숙이 쳐박아 놓았던 ASX드라이버와 캘러웨이퓨전드라이버까지 꺼내 갖다. 하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습장에서 돌아올 때 새 드라이버를 사는 게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통상 필자는 골프연습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KBS 제1FM방송에 채널을 맞춰 음악과 일기예보 등 생활정보를 듣곤 하는데 바로 그날 우연히 ‘뇌를 깨워라’라는 프로에서 카사노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그 방송을 듣기 이전까지 카사노바는 호색한 내지는 엽색가로서 기껏해야 예술과 풍류를 즐긴 낭만주의자이었을 것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방송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카사노바가 이탈리아어는 말할 나위도 없고 영어와 불어, 라틴어 등 각종의 외국어에 능통하였을 뿐아니라 17세 젊은 나이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천재였고,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 계몽주의 철학자였으며, 사제이자 외교관, 또한 문학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탁월한 벤처사업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그가 왜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전락하였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 지난 한 달여 동안 드라이버에 만족하지 못한 채 이것저것을 편력하여 온 필자의 우둔함이 부끄러워졌다.

260야드까지 나가던 드라이버가 갑자기 230야드밖에 나가지 않을 경우 그 원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드라이버에 손상이 없지 않다면야 당연히 골퍼에게 그 원인이 있지 않겠는가? 골퍼의 취향을 모두 다 만족시켜줄 완전무결한 드라이버의 존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그것을 제조하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그것을 사용하는 골퍼들의 다양한 취향에 비추어 볼 때, 불을 보듯 명백한 일이 아니겠는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은 왜 보느냐고 힐난하던 가르침을 받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건만, 골프 경력 20년에 아직도 연장 탓하고 있는 어리석음이란, 카사노바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입력시간 : 2004-12-02 00:3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