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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 여행] 하덕규(上)
은유와 서정의 뮤지션
음악과 미술의 아름다운 동행


시인이자 라디오 DJ, 싱어 송 라이터인 남성 듀오 시인과 촌장의 리더 하덕규. 음유 시인으로 불리는 노래 속에는 기독교적인 향내가 은은하다. 시인과 촌장은 하덕규의 꾸밈없는 보컬과 함춘호의 탁월한 기타 연주가 일궈내는 절묘한 조화로 들국화, 김현식, 조동진 등과 함께 1980년대 젊은 영혼들을 사로 잡았다.

조성모, 유리 상자, 이정봉 ,이은미 등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가시 나무’는 이후 신드롬이 생겨났을 만큼 주목 받았던 그의 대표곡.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 또한 그의 곡이다. 아름다운 재킷 그림을 스스로 그렸던 하덕규는 이정선에 이어 음악과 미술의 결합으로 대중 음악의 수준을 예술로 끌어 올린 뮤지션이다.

하덕규는 3남 6녀의 대가족 집안에서, 1958년 7월 21일 강원도 홍천 태생으로 태어났다. 선친은 평남 진남포에서 한국 전쟁 때 내려와 하덕규의 모친과 재혼을 하고 속초에 터전을 마련했다. 어린 시절 드넓고 푸른 동해 바다와 설악산이 있는 속초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성장했다.

벌거숭이로 동네 친구들과 뛰놀며 물고기를 잡던 추억이 서려 있는 어린 시절의 고향 정경과 자연은 그에겐 천국이었고 음악의 중요 DNA로 자리잡았다. 속초 천진 초등 학교를 다니던 9살 때 서울 숭의 국민 학교로 전학했다.

처음 화려한 서울에 호기심이 넘쳤지만, 1년 후 가정이 깨어지고 부친의 사업마저 실패해 가난과 긴 고통의 터널로 접어 들었다. 한영중에 입학하면서 음악이 좋아져 기타를 가지고 싶었으나 꿈같은 일이었다. 중 3때 펩시 콜라 뚜껑 상품권 응모에 응모해 기타가 생겼다.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해 트윈 폴리오, 어니언스의 노래를 멋지게 연주할 만큼 실력이 붙었다. 하지만 한영고에 진학하면서 여러 번 가출을 한 그는 고향 설악산에 올라 텐트 생활을 하는 극심한 방황기를 겪었다. 현실에 적응 못하고 성격도 내성적으로 변해 갔다. 그는 고통을 심해지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았다.

여러 미술 대회에서 수상을 하며 화가를 꿈꿨던 그는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기에 전념했다. 홍대나 중대를 지망했지만 필기성적이 좋지 않아 1980년 뒤늦게 추계예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어 1학년 때 중퇴를 했다. 이후 2년 가량 화실을 경영하며 틈틈이 작곡을 했다.

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해 미국 유학을 준비했지만 가난은 늘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서 쉽게 돈과 명예를 얻을 것 같아 동창생 오종수, 후배 전홍찬과 트리오 ‘바람개비’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하덕규는 이종환이 운영했던 명동 쉘부르의 노래 자랑 대회에 출전, 3전 4기의 자세로 인상을 심어로 낮 시간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불렀다.

이후 오종수와 듀오를 결성, 유니버샬과 계약금 130만원에 창작 곡 11곡이 수록된 데뷔 음반을 냈다. 팀 이름은 서영은의 단편소설 ‘시인과 촌장’으로 정했다. 삶을 반영하는 깊이 있는 음악의 정립은 부족했지만 장르의 탐색이 치열했던 데뷔 음반은 포크와 록을 넘나들며 독특한 사운드를 이끌어낸 ‘짝사랑’, ‘꽃을 주고 간 사람’, ‘님 타령’등이 학생층에 강하게 어필 되었다.

몇 차례의 방송 출연 후 아티스트를 소모품으로 여기는 방송 관계자들에게 심한 모멸감을 느끼고 “가요계의 병폐적 속성에 영합하기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오종수가 결혼 후 사업을 하기 위해 도중 하차를 하는 바람에 음악적 모색기를 맞이했던 때이기도 했다.

김민기, 한대수, 미국의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가 그에게 영향을 준 국내외 뮤지션들. 솔로로 독립한 하덕규는 김민기, 조동진, 김창완, 전인권 등과 교류를 하며 삶과 음악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났다. 82년 옴니버스앨범 ‘독도는 우리 땅’에서 종이비행기가 부른 ‘안녕’, 이병훈에게 ‘님타령’, 83년 남궁옥분에게 ‘슬픈 재회’를 주며 작곡가로도 호평을 얻어낸 그는 83년 대성음반에서 첫 독집을 냈다.

하덕규는 제작사의 상업적 의도만이 반영된 이 음반을 지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즐겨 불렀던 ‘진달래’등에서 음악적 변화를 추구했던 때이기도 했다. 혼란스러웠던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반항보다는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는 맑고 건강한 노래를 추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삶과 노래의 현실적인 괴리감은 고통을 동반했다. 그래서 위스키 반 병을 마셔야 잠이 들었고 하루 2갑 이상 씩 줄담배를 피우며 그의 심신은 망가져 갔다.심신이 황폐화되어 가던 86년 겨울, 누나가 다니던 교회를 찾았다. “저를 シ覃慧?이중성이,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된 채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임을 발견했지요”

84년 기타리스트 함춘호를 만나 2기 시인과 촌장을 재결성했다. 85년 우리 노래 전시회 프로젝트 음반에 참여해 ‘비둘기에게’를 발표했고 이정선에게 ‘외로운 밤에 노래를’, 양희은에게는 ‘한계령’‘찔레꽃 피면’을 주며 작곡가로 주목을 받았다. 86년 은유와 시적 상상력이 넘쳤던 하덕규의 음악과 함춘호의 연주가 빛났던 시인과 촌장 2집 ‘사랑 일기’를 발표했다.

이 음반의 히트를 발판으로 하덕규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의 음악에 빈번하게 이미지화 된 ‘비둘기’는 평화의 의미를 뛰어 넘어 ‘희망과 사랑’을 꿈꾸는 자신의 분신이었다. 그는 ‘고양이’를 통해 부도덕하고 교만한 가진 자들에 대한 비판을 가했고, ‘사랑 일기’와 ‘풍경’을 통해 세상과 자신을 껴안으려는 의지를 동시에 보여 주었다. 창작과 노래는 하덕규, 함춘호는 연주에만 전념하는 독특한 시스템이었다.

입력시간 : 2004-12-0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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