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밑 빠진 독에 물 채우기


어떤 이가 사법 시험에 합격하였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지능지수가 아주 높은 천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합격생이 증가하는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일을 도와 주다가 우연히 생활 기록부를 몰래 훔쳐 보고 나서, 나의 지능 지수가 두 자리 수에 불과한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 후 사법 시험에 도전하기 위하여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와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두 자리 수의 IQ를 가진 내가 천재들만이 합격한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내내 불안해 하며 살았다. 그렇지만 나는 꿈을 버릴 수 없어 전문 고시반이 있는 대학에 진학하였다. 대학에 입학한 다음 본격적으로 사법 시험에 응시하기 위하여 법률 서적을 읽으면서도, 언제나 지능 지수가 두 자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염려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반원들이 모여 있는데, 선배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마침 그 선배는 바로 얼마 전 사법 시험에 합격하여 사법 연수원에 다니면서 우리 고시반의 대장이 되어 반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 사람들은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라고 하면 어떻게 물을 채울 수 있느냐고 반문하지. 그러나 어렸을 적에 우연히 어머니께서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모습을 보면서 밑 빠진 독에도 물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밑으로 새어 나가는 물보다 들이 붓는 물이 많아지면, 밑 빠진 독에도 물이 채워지는 것을 보았던 것이지. 사법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한 번 읽었던 것을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하고 쉽게 잊어버려 머리가 나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지혜를 떠올렸어. 그러면서 잊어 버리는 것보다 더 많이 자주 읽게 되면 반드시 합격할만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머리 나쁜 나 자신을 격려하며 공부하였더니 마침내 합격하게 되더라구.” 선배님의 말을 듣는 순간, 지능 지수가 두 자리 수밖에 되지 않는다는 나의 우려는, 동쪽 하늘에 아침 해가 떠오름에 따라 새벽녘의 안개가 걷히듯이, 말끔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레슨을 받고 있다. 그런데 프로는 매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일주일에 두 번 밖에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레슨 프로를 다시 만날 때쯤이 되어서는 전번에 배운 것을 통째로 잊어 버린 상태라서 다시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형국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밖에 받지 못하는 골프 레슨에서는 사법 시험 공부할 때 유용하게 사용했던,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묘법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런 식으로 배운다면 언제쯤 스윙을 교정하거나 골프 실력을 늘릴 수 있을 지 강한 의구심이 생겼고, 심지어 레슨을 받는 것이 무용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한편 물방울도 바위를 뚫을 수 있음을 들어 무슨 일이든지 꾸준히 하게 되면 성취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었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 무슨 일이든지 꾸준히만 하면 된다.” 는 식의 가르침에는 용납하기 어려운 잘못이 있다. 왜냐하면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에서 일러주듯 우리는 누구나 유한적인 존재로서, 살아있는 동안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며칠 동안 골프 레슨을 받아오며, 현재의 골프 교습 관행에 커다란 허물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입력시간 : 2004-12-1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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