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골프실력이 늘었어요


어젯밤의 일이다.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국선 변호인으로서 상고이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눈이 침침해지는 것 같아서 잠깐 쉬는 동안에 클리브랜드 샌드웨지를 잡고 거울 앞으로 가서 연습 스윙을 몇 번 해 보았다. 바닥에 깔린 카페트의 선에 맞추어 테이크백을 하면서, 요즘 이 프로로부터 지적 받은 오른 손 그립의 상태를 지켜 보고 있던 중, 지금까지 해 보지 못한 전혀 색다른 동작이 떠올랐다. 밤 아홉 시 반이 넘은 시간이었다.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컴퓨터의 전원을 끝 다음 퇴근하는 길에, 곧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골프 연습장에 갔다. 그리고 골프 연습장에서 30여분 동안 점검을 해 보았지만, 사무실의 거울 앞에서 느끼며 생각했던 그런 스윙이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실의에 빠져 캐디 백을 챙겨 차에 싣고 집에 가기 위해 운전석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노라니, 문득 자신이 참으로 실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겨울 동안 열심히 연습하고 나서 다음 골프 시즌이 시작되었을 무렵인, 지난 봄에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당시 골프가 좀 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일요일 아침, 골프장에 나가기 전 밥상 머리에 앉아 아내와 아들이 듣고 있는 데서, 금년에는 펄펄 날고 다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반문하는 것이었다.

“ 아빠, 매년 시즌이 시작되면 골프가 늘었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올해도 느셨다면, 이제 변호사 일 그만 두시고 PGA로 진출하심이 어떻겠어요? ”

듣고 보니 지난 수 년 동안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식구들 앞에서 골프 실력이 늘었다며 자랑했던 것 같았다. 아마도 누계로 치면, 언제나 언더 파를 치고 다닐 만큼, 셀 수없이 여러 번씩 자랑했었다. 그렇지만 나의 골프실력은 어쩌다 재수 좋으면 언더 파를 치는 일도 있기는 하나, 어떤 날에는 80을 훌쩍 넘기는 식으로, 부침을 반복하면서 평균하여 70대 중반 정도에 머물러 왔었다. 특히 지독히 골프가 잘 되지 않은 어느 날에는 집에 돌아와 식구들 앞에서 클럽을 탓하거나 “레슨을 받아야겠다”고 말하는 등 푸념하기도 했다. 이런 나를 지켜보아왔던 아들이 그날 아침에는 비꼬듯 내게 직격탄을 날렸던 것이다. 그러자 나의 골프에 관한한 좀처럼 말이 없던 아내도, 그날에는 한마디 내뱉었었다.

“당신은 연습장에 다녀와서는 늘 뭔가 새로운 것을 느꼈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나가보면 여전히 그 수준밖에 안 되더라구요! ”

오늘 아침에는 잠자리에서 눈을 뜨고 보니 시계 바늘이 6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아무리 서둘러서 연습장을 간다 해도, 30분도 채 못하고 돌아와야 할 것 같았다. 그러자 다른 날과 달리 어제는 조석으로 두 차례나 골프 연습장에 다녀왔었으니, 오늘은 빼먹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잠자리에 드러누우려는 순간, 밤늦게 골프 연습장을 찾아가게 했던, 사무실에서의 골프 스윙이 떠올랐다. 벌떡 일어나서 차를 몰아 연습장으로 갔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젯밤에 되질 않던 골프 스윙이 되었다. 그 바람에 오늘 아침에는 평소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연습장에 머물렀었다. 그런 다음 집으로 돌아오던 차 안에서,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혼자서 미소를 지었다.

“ 오늘 아침 확인한 것을 몸에 익히면서 이번 겨울을 보내고 나면, 내년 봄에 나와 함께 라운딩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나의 골프 스윙이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말할 것이다! ” 막상 내년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 보면, 올해와 별로 달라질 것이 없겠지만….

** 소동기 변호사ㆍ골프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12-2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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