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의 달인, 유혹의 기술

'작업'의 달인, 유혹의 기술
[영화 되돌리기] 스캔들

‘오늘날 우리는 유혹의 기술이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로버트 그린의 저서 ‘유혹의 기술’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책에서 저자는 물리적인 폭력과 잔인한 힘의 시대는 가고, 달콤하며 열정적인 유혹의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자신만만한 눈빛과 표정으로 미국민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존 F. 케네디, 극적이며 종교적인 스토리로 국민들에게 성녀로 추앙받은 에바 페론,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뒤흔든 유혹의 여신 클레오파트라처럼 유혹의 심리전에서 승리한 자는 역사 속에서 신화나 스타로 남아있다. 하지만 역사상 유혹자라 불리던 사람들은 대개 난봉꾼, 오입쟁이, 바람둥이, 화냥년 등으로 불리운 경멸과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다.

라클로의 소설에 나오는 발몽도 그와 같은 대우를 받은 위험한 카사노바다. 그러나 이제 이들이 발휘한 유혹의 기술을 재조명할 때가 왔다. 왜? 유혹만큼 매력적인 심리 언어는 없으니까. 도덕과 관습에 충실한 정절녀를 농락한 발몽. 그의 유혹의 기술을 영화를 통해 한번 따라가 보자.

하지만 배경은 프랑스가 아닌 조선시대. 남녀가 유별한 이 곳에서 유혹은 더 불경스럽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유혹을 둘러싼 긴장과 불안, 희열은 더 증폭되기 마련이다. 진정한 유혹자는 원래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성공할 확률이 희박한 사냥감에 매력을 느끼는 법.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를 유교사상이 뿌리깊은 조선에서 만나본다는 것은 더욱 스릴 있는 일일 것이다.

영화 ‘스캔들’의 유혹자 조원과 유혹당하는 여자 ‘숙부인 정씨’. 이들은 각각 노련한 사냥꾼과 욕구불만 사냥감이다. “도덕적일 수록 유혹을 원한다”는 위대한 유혹자 나탈리 바니의 말처럼 정절녀 숙부인 정씨는 무의식적으로 오매불망 유혹당하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르고 노련한 사냥꾼은 바로 이 점을 노리고 도덕적인 그녀에게 불경스런 꼬임을 시도한다. 우선 유혹은 우회적으로.

그녀가 다니는 천주학당에 재정적 지원을 함으로써 제 3자의 신뢰를 얻고 주변인을 포섭해서 그녀의 불안을 잠식시킨다. 유혹자는 본래 눈에 띄지 않게 거미줄을 쳐서 먹잇감이 제 발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법. 또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혹의 언어를 구사하고 상대를 고립시켜 의존케 만든다. 거리 모리배들 사이에서 희롱당하는 숙부인 정씨를 구하는 조원은 역시나 훌륭하게 이 기술을 발휘한다. 또한 그녀를 통해 새로운 삶을 찾았다며 그녀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시키는 것도 좋다.

하지만 유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와의 관계를 정신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녀의 종교 활동에 동참하고 문학과 사상에 조예를 표한다. 육체를 정복하고 싶다는 욕정을 자제하고 그녀의 몸이 아니라 마음을 원한다고 가장해야만 한다. 실로 지루한 마라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목표를 위해서 위대한 유혹자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마지막 숙부인 정씨가 “그는 나의 몸을 원한 게 아니었어요”라고 백기를 들고 그를 허락하면 그제서야 지루한 심리게임을 막을 내리게 된다.

영화 스캔들은 이들이 밀고 당기는 아슬아슬한 심리전을 매혹적인 색감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의 묘미는 성적 암시가 녹아든 달달한 조원의 말투, 은밀한 규방, 거기에 감춰진 여성의 속살을 숨어서 보는 듯한 아찔함에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유혹받고 싶어한다. 마찬가지로, 누구나에게 매력적이고 설득력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매력적인 사람이 정치적 협상에서, 사랑의 줄다리기에서, 대중의 지지에서, 시장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유혹이란 결국 쾌락을 목표로 감정을 조정하고 욕망을 자극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은 조원이 결국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우를 범한 것을 보면 역시 기술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유혹의 기술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바로 가슴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진실한 사랑일테니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1-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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