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의 잔인한 말로

[영화 되돌리기] 히 러브스 미
짝사랑의 잔인한 말로

유럽에서 행해지던 수많은 사랑의 주술들을 보면 때로는 잔인하고 끔찍한 사랑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사랑을 이루어지게 하는 주술은 사랑하는 사람의 약손가락에서 나온 피로 과자에 원을 그린 후 그 과자를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어 먹는 것이다. 아일랜드에는 짝사랑에 빠진 여자가 밤에 공동묘지에 가서 죽은 지 9일이 지난 시체를 파내 그 시체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살가죽을 끈처럼 길게 벗겨내 사랑하는 남자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남자의 팔이나 다리에 묶어 놓는 주술이 있다고 한다. 짝사랑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 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증거들이다. 약손가락을 베인 사람이나 시체의 살가죽 끈으로 몸이 묶인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짝사랑이 한낱 지독한 범죄일 뿐일테니 말이다.

최근 개봉한 조엘 슈마허 감독의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지독한 짝사랑이 등장한다. 선천적으로 흉측한 외모를 지닌 추남 에릭은 미모의 프리마돈나 크리스틴에게 열렬히 구애한다. 하지만 감금, 협박, 살인 등 광폭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구애법은 크리스틴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 자신의 잔인한 짝사랑으로 그는 결국 세상을 등지고 어둠의 공간으로 숨어들어간다.

제니퍼 챔버스 린치 감독의 영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에서는 애정결핍으로 성장한 외과의사가 짝사랑하는 여자의 팔과 다리를 자르면서까지 그녀를 곁에 두려고 하는 광적인 짝사랑이 나온다. 다행히 이러한 컬트적인 구애법이 모두 꿈속의 환영으로 밝혀졌지만 그의 순진한 짝사랑이 하드코어적인 섬뜩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 놀랍다.

로맨스가 빠지고 집착이 되어버리는 짝사랑. 이러한 비극은 사랑이 본질적으로 일종의 정신병적인 증세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더군다나 사랑이라는 일종의 정신병에 걸린 사람이 바라던 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경우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도 높은 정신병적 상황에 처해지기 마련이다.

아멜리에에 등장했던 오드리 토투 주연의 영화 ‘히 러브스 미’는 짝사랑이 불러일으킨 정신병적인 망상장애를 다루고 있다. 사실 영화 초반부에서 미술학도인 안젤리크(오드리 토투)는 유부남 심장 전문의 루이와 사랑하는 사이인 듯이 등장한다. 안젤리크는 루이의 아내를 질투하고 그와 단둘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등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관객이 바라본 실상은 모두 루이를 짝사랑한 안젤리크의 착각이었다. 영화는 지고지순해 보이는 짝사랑이 지긋지긋한 스토킹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안젤리크의 짝사랑은 실제 존재하는 정신병의 일종인 망상장애에 가깝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도 자신을 사랑할 거라고 믿는 망상인데 이러한 망상 가운데 안젤리크의 경우는 영화의 스타 같은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며 스타도 자신을 사랑할 것으로 믿어 전화, 편지 등을 보내고 받지 않으면 주변에서 방해한다고 믿는 ‘색정형’ 망상장애다. 이는 90년대 최고의 범죄 스릴러 영화 ‘미저리’에도 등장한다. 유명한 소설가의 광팬인 여 주인공이 소설가를 납치, 감금해 자신만을 위한 소설을 쓰라고 강요하는 내용의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색정형 망상에 사로잡혀 위압적으로 사랑을 갈구한다.

망상장애에 빠져버린 짝사랑은 사실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사회에도 수도 없이 많은 망상장애 환자들이 있다. 특히 나를 뽑은 국민들이 모두 날 지지하겠지 하고 착각하는 정치인들의 부질없는 망상과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하나 사랑의 결실을 보지 못하는 대통령의 서글픈 외사랑만큼은 하루빨리 끝나야 하지 않을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1-24 11:59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