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세상만사 변하는 것


82, 79, 85, 72. 봅 호프 클래식 대회에 참가하였던 데이빗 듀발의 나흘간 성적이다. 64, 63, 66, 69. 이것은 같은 기간 동안 선두를 달리고 있던 오길비의 스코어다. 66, 67, 68, 64, 67. 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던 저스틴.레너드의 성적이다. 선두가 26언더파를 기록하는 사이에 꼴찌인 데이빗 듀발은 30오버 파를 기록하고 있었다. 선두와는 무려 56타차다. 그는 몇 년 전 이 대회에서 한 라운드에 59타를 기록한 적이 있었다.

더욱이 그는 한 때 세계 랭킹 1위에 올랐을 만큼 혁혁한 성적을 올리면서 타이거 우즈와 어깨를 견 줄 수 있는 유일한 선수라는 격찬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런 스코어를 내다니! 데이빗.듀발은 시즌 오픈 대회인 소니오픈에서는 첫날 79타를 치자 기권했었다.

나에게는 골프를 좋아하는 것 이외에 스피드를 좋아하는 숨겨진 면이 있었다. 그래서 10여 년 전에는 여러 가지 사정상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스포츠카를 사는 것이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승용차 중에서도 속도를 내어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한 대 구입했던 일이 있다. 시중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는 아니었을지라도 상당히 값나가는 것이었다. 50여 년을 살아 온 지금까지 내가 구입한 물건 중에 가장 많은 돈을 지불했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만지지도 못 하게 하면서 직접 세차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것을 애지중지하였다.

그러나 자동차를 구입한지 다섯 해도 되지 아니하여 메이커에서는 새로운 자동차를 내놓았다. 게다가 나의 자동차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차체에는 상처가 났고 가끔씩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러면 나는 정비 공장에 자동차를 끌고 가서 조이고 닦으며 바꾸기도 하였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자동차가 더욱더 낡고 초라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시간이 흐를수록 길에 나가면 더욱 새로운 차들이 활개를 치며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차에 대한 애착심은 점점 엷어져 갔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어느 날 문득 태어나는 순간이 곧 죽음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의 자동차는 내가 구입한 그 순간부터 고물이 되어가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얼마를 주고 구입하였든지 간에 자동차는 그 순간부터 고물이 되는 것이었다.

데이빗 듀발이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고물이 되어가던 자동차를 지켜보며 안타까워했던 시절을 떠올렸었다.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도 생각했다.

고대그리스에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영원한 변화’와 ‘대립물의 결합’에 관한 신념을 펼쳤다. 그는 “태양은 날마다 새롭다”라거나 “동일한 강물에 두 번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생 시절 그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읽었었다. 특히 “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요, 만물의 왕이다. 전쟁은 어떤 것은 신으로 만들고, 어떤 것은 인간으로 만들며, 어떤 것은 노예로 만들고, 어떤 것은 자유인으로 만든다. 전쟁은 모든 것에 공통되어 있고, 싸움은 정의이며, 또한 모든 사물은 싸움을 통하여 존재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는 것을 읽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진의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없어 고민하였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이처럼 영원한 변화를 주장하고 있을 때, 파르메니데스라는 철학자는 어떠한 것도 변화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소동기 변호사골프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2-2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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