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PGA의 한국풍을 기대하며


거의 매일 아침 5시 무렵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 이런 습관이 나에게 몸에 배었는지에 대하여는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대학생 시절부터는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 때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조깅을 했다. 한강변을 달리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골목길을 쓸었다. 그리고 나서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은 다음 도서관을 가곤 하였다.

그런데 골프를 알고 난 이후부터는 새벽 달리기가 연습장에 가는 것으로 대체됐다. 그리고 연습을 많이 했든 적게 했든 상관 않고 7시 10분께가 되면 골프 연습장을 나온다. 집에 돌아 와서 샤워를 한 다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근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2005년 2월 7일 아침.

그 날은 다른 날과 달리 8시 10분이 되어서야 골프 연습장에서 나왔다. 늦잠을 자서 6시 50분이 되어 도착하고도 7시 10분이 되면 골프 연습장을 나서는 버릇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8시10분이 되어서야 골프 연습장을 떠났던 것이다.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서서 골프 연습장에 도착한 그 날은 아무도 나오지 않은데다가 연습장은 문을 열지도 않았다. 한동안 차 안에 앉아 있다가 연습장 저 뒤편에 있는 숲,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으슥한 곳을 찾았다. 잠시 실례를 한 뒤에 돌아 오니 연습장의 문이 열렸고, 그 사이에 내장객이 한 사람 더 와 있었다.

타석을 배정 받고 타석으로 가던 중 휴게실에 들려 텔레비전을 켜니 FBR 오픈 골프를 중계 방송하는 장면이 화면에 비쳤다. 나흘째 날의 생중계를 하고 있었다. 셋째 날의 결과를 모르고 있었던 나의 눈에는 희귀한 장면이 보였다. 다름 아닌 마지막 조에서 한국 선수가 두 명이나 비치는 장면이었다. 물론 우승자인 필 미켈슨에 뒤져 있기는 하지만, 마치 한국 선수 두 명이 미국 선수 한 명을 협공하고 있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 어! 이러다가 PGA투어도 한국 선수들의 독무대가 되는 것 아냐?” 문득 1998년도 LPGA의 US 오픈에서 박세리가 선전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당시 우리는 소위 IMF사태로 모두가 주눅이 들어 있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은 찬사가 아닌 비아냥거림의 상징으로 전락했던 때였다. 남들은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우리들 자신마저도 우리들의 능력에 대하여 강한 회의를 품고 좌절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외환 위기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전 국민들 사이에서 나라 빚을 갚으려는 금 모으기 운동이 전개됐다. 그 일이 외신의 관심을 잔뜩 사면서, 다시 일어 서고자 하는 희망의 불씨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때마침 홀로 LPGA 무대에서 선전하고 있던 박세리 선수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던 사건은 그 후 오늘날과 같이 20여명이 넘는 한국의 낭자들이 LPGA의 무대에서 활개 치게 한 커다란 전기가 되었음은 주지하는 바다.

한국 선수들의 출전에 제한을 가하거나, LPGA무대에서는 한국말을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자고 하는 등 기이한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 LPGA무대가 우리 낭자들의 아성이 될 줄을 과연 누가 예상이나 했던가?

젊은 골퍼들이여! 2005년 FBR오픈골프대회의 마지막 날의 모습을 가슴에 새기면서 당신들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젊음에 더욱 강렬한 불을 지피길.

소동기 변호사·골프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3-02 19:20


소동기 변호사·골프 칼럼니스트